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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9 18:39 수정 : 2014.12.29 18:39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도시의 어느 소비자단체에서 농민들이 소독된 종자로 농사를 짓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사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꽤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극소수의 존경스러운 농사꾼을 제외하면 오늘날 농사에 필요한 대부분의 종자나 모종은 시중에서 구입해서 쓰고 있다. 전문회사에서 구입한 종자는 갖가지 색깔로 코팅되어 있는데, 농약의 일종인 소독약으로 옷을 입힌 것이다. 유통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고 땅속에서 발아될 때까지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그래서 포장재에는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쓰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있다.

오늘날 농사꾼들이 종자를 자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옳지 않은 일이지만 농업이 상업화되는 추세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문회사가 개발해서 보급하는 종자는 병해충에는 약할 수 있으나 수확량도 많고 때깔도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민이 스스로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종과 보관에 세심한 주의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튼실한 열매를 골라야 하고 되도록 부드럽게 탈곡해서 잘 말린 다음 쥐나 해충의 피해를 보지 않을 곳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배추나 무처럼 가을에 수확하고 봄에 씨앗을 맺는 품목은 농사일을 매우 번거롭게 할 것이다. 파종기에 농약방에 발걸음 한 번 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당장 수확을 늘려주지도 않는 자가채종에 농민들이 의욕을 낼 리 없다. 또 종자 소독에 쓰인 성분은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확물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한몫할 것이다.

소독된 종자를 쓰지 말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싶어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명품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집착이 만연해가고 있는 최근의 소비 성향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요구의 이면에는 소비에 대한 명품 추구와 맥이 닿는 고급 취향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된다. 1차 농산물에는 명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사소한 것까지도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국내 유수의 농산물 직거래 단체에서 쓰는 홍보 문구에는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윤리적인 소비가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드넓은 태평양의 어딘가에는 해류의 흐름이 멈춘 곳이 있다는데, 여기에는 바다에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흘러온 쓰레기가 거대한 섬을 이루고 있고 그 면적은 무려 한반도의 세 배나 된다고 한다. 이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은 인류 문명의 미래상을 보는 것 같아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오늘날 생산과 소비가 철저히 분리된 현실에서 자급하지 않는 모든 소비는 원천적으로 윤리적이지 않다. 외부에서 구입하는 소비재에는 생산과 보관, 운송, 포장,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지구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쓰레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부딪혀 환경오염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소비는 ‘범죄적’이라 할 만하다. 필연적으로 유형 무형의 쓰레기를 낳게 되는 소비가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소비생활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고급 취향은 균형감각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급자족이 시대착오적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비생활이 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생각과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 또한 농민에게 완벽한 농사를 지으라는 요구는 농업·농촌이 붕괴되는데도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하기로 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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