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04 18:39 수정 : 2015.01.04 21:13

미국과 쿠바의 아주 오래된 적대적 관계가 끝났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메리카대륙의 ‘베를린장벽 붕괴’다. 물론 관계 정상화의 길은 이제 시작이다.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마이애미 정치’다.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 체제를 떠난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플로리다 해협의 맞은편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그들은 신문을 발행하고,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면서 카스트로 정권을 반대하는 도덕공동체를 유지해왔다.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에 모인 쿠바인들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배신자’ ‘반역자’라고 욕했다. 다만 시위대는 소수이고 대부분 노인들이다. 쿠바 공동체의 세대 차이는 뚜렷하다. 늙은 쿠바인들은 미국이 카스트로 체제를 붕괴시키기를 원한다. 그들은 언제나 공화당을 지지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는 쿠바계의 82% 지지를 얻었다. 그래서 플로리다주에서 겨우 537표 차로 앨 고어를 이길 수 있었다. 쿠바계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앨 고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부시는 당선 이후 강경한 쿠바정책으로 호응했고, 쿠바 망명자 출신들을 공직에 진출시켰다.

젊은 세대는 다르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은 이를 갈며 쿠바를 떠나온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와 다르다. 이념이 아니라, 이익으로 쿠바를 바라본다. 젊은 세대는 쿠바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어 마이애미 경제가 나아지기를 바란다. 2013년에 한 여론조사에서 마이애미의 쿠바계 가운데 68%가 양국 관계의 개선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마이애미는 이제 공화당의 텃밭도 아니다. 오바마는 2번의 선거 모두 쿠바계의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 쿠바 정책의 전환은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다만 정치는 언제나 대중의 의식변화보다 한발 느리다. 현재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주자 중 2명이 마이애미 정치의 수혜자들이다. 젭 부시는 쿠바계의 지지로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했다. 그는 오바마의 결정을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올해 43살로 쿠바계 2세다. 루비오는 독재정권과의 관계개선을 ‘수치’라고 비난했다. ‘노인처럼 생각하는 젊은 친구’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를 성장시킨 증오의 정치가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쿠바 변화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쿠바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닉슨 대통령이 중국에 가기 전에 썼던 표현이다.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상공회의소도 이번 조처를 환영했다. 봉쇄라는 낡은 이념이 아니라, 접촉의 미래 이익에 공감하는 여론이 훨씬 높다.

한반도에 어떤 시사점을 줄까? 북한은 쿠바의 변화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협상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적극적으로 중재했다. 쿠바와 교황청의 관계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었고, 쿠바는 종교의 자유를 포함해 인권개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에 대해서는 접촉을, 북한에 대해서는 봉쇄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론이 작용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쿠바처럼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새해 들어 남북 모두 관계 개선을 거론했다. 중요한 것은 대화의 형식이 아니라, 대화의 환경이다. 국내적으로 증오를 부추기면서, 대외적으로 화해가 가능할까? 대화의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출발이고, 봉쇄를 중단해야 접촉이 시작될 수 있다. 마이애미 정치도 변했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증오의 정치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는 희망의 정치를 보고 싶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