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던 2004년 여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도요타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그에게 삼성이 도요타처럼 번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오쿠다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이 오랫동안 번영하려면 어떻게 사회에 공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후로 10년, 한국의 재벌은 과연 그런 고민을 했을까. 최근에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벌을 향한 사회적 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오만한 재벌 3세의 모습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고 인격마저 모자라는 세습 경영자들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도 당연하다. 2009년 도요타에서도 창업주의 3세가 최고경영자가 되었지만, 그는 자동차공장의 직원으로 입사하여 16년 만에 임원이 되었다. 반면 한국의 재벌 3세들은 입사한 지 평균 3년 만에 임원이 되는 현실이다. 이번 사건은 또한 총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한국 재벌의 제왕적인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총수의 자녀가 황태자와 같은 회사에서 임직원들은 이들의 눈치만 보며 화를 키웠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기업을 물려받은 이들의 잘못된 결정이 비행기를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 경제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오랫동안 애증의 대상이자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재벌은 고도성장의 견인차였고 세계가 놀라는 성공적인 기업모델이었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변화하며 부작용도 커졌고, 재벌의 왜곡된 기업지배구조와 취약한 금융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위기 이후 많은 재벌개혁론자들은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여 총수일가의 전횡을 견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다른 이들은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며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재벌개혁론자들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올바르게 제기했지만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간과했다. 반대로 대타협론은 기업집단의 장점과 정부의 역할을 정확히 인식했지만 재벌이 타협할 이유가 없었기에 공허한 외침이었다. 선거 때마다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재벌은 정계와 관계 그리고 법조계와 언론을 장악했다. 권력은 시장이 아니라 재벌에 넘어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기업과 국민 모두가 함께 번영하기 위해 재벌개혁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재벌의 상속 과정에서 편법을 근절하고 금산분리 등의 규제를 위해 정부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은 기본이다. 또한 공정경쟁을 가로막고 세습의 수단이 되는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한 하도급거래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에 납품하는 부품회사 중 현대차 계열사의 영업이익률은 비계열사에 비해 3배나 높다. 그리고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주주 외에도 노동자의 경영참가와 같이 재벌의 지배구조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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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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