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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8 18:41 수정 : 2015.01.08 18:41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고장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기계는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램이 멈춰서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심지어 운영체제 자체가 먹통이 되기도 합니다. 윈도 사용자들이 과거에 왕왕 겪었던 이른바 ‘공포의 블루 스크린’도 윈도라는 운영체제가 작동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애초 설계대로 완전하게 움직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미 시스템의 무오류성이나 무모순성이 일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거대 기술시스템인 원자력발전소(원전)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원전에서는 핵반응으로 얻은 열로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그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뜨거워진 물은 냉각돼 다시 원자로로 보내지지요. 온도, 압력, 수위 등을 제어하는 여러 장치가 컴퓨터 시스템의 통제 아래 디지털 논리회로와 아날로그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동돼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복잡하게 구성된 시스템이 제대로 운전되려면, 각각의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상호작용해야 함은 물론, 수많은 부품과 케이블, 원자로나 배관의 용접 부분 등 사소해 보이는 듯한 부분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 군데서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된 신호들이 오갈지도 모릅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 온전했던 부품이 부식되기도 합니다. 이미 수명을 한번 연장한 고리 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앞두고는 원자로의 연성-취성 천이온도가 높아졌는지 그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천이온도가 냉각수 온도보다 높아지면, 비상사태 때 원자로가 깨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해지는 거지요. 한국수력원자력을 해킹해 원전 설계도 등을 빼낸 자칭 ‘원전반대그룹’이 원전을 공격하겠다고 한 지난해 말 이후로는, 중앙 컴퓨터 제어시스템의 안정적 운전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와 컴퓨터가 결합한 거대 기술시스템은 결코 완전무결한 존재일 수 없습니다. 오래된 시스템일수록 잘못될 가능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다음주부터 이미 2년 전에 설계수명이 다해 지금까지 가동 중단 상태에 있던 월성 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 여부를 심의한다고 합니다. 회의를 몇차례 거치고 나면 월성 1호기는 수명이 10년 더 연장되거나 아니면 영구 정지될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설계수명을 넘긴 오래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건 본질적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이 ‘영구 정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길 희망합니다.

후쿠시마에서와 같은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해도 원자력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핵폐기물 때문입니다. 고준위 핵폐기물인 폐연료봉은 방사성 붕괴를 계속합니다. 수만년 이상 안전하게 가둬두어야 할, 꺼지지 않는 불이지요. 사실 우리에겐 이런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습니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월성 1호기는 영구 정지를 넘어 폐로되어야 합니다. 물론 관련 규정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정도로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폐로가 필요합니다.

폐로를 미루고 월성 1호기를 재가동해야만 할 시급한 사정도 없어 보입니다. 전력수요가 늘지 않는 최근의 흐름을 헤아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설령 전기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는 수급체계와 요금체계를 효율적으로 바로잡아 풀어야 할 과제지, 수명 다한 원전을 재가동해야 할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월성 1호기의 폐로는 탈핵론자뿐 아니라 전력계통의 효율적 운용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찬핵과 탈핵을 가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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