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에 세간의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의자 강아무개씨가 우리 사회의 성공한 중산층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점 때문이다. 명문대 경영학과, 외국 유학, 외국계 회사 상무, 강남의 고급 아파트, 10억대 재산 -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성공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갖춘 자가 이런 참극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하는 것이다. 그는 갑작스러운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로 ‘미래에 대한 불안’에 괴로워하다 가족의 동반자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온실의 화초처럼 성장한’ 자의 유약한 심성에서 사건의 원인을 찾지만, 진짜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이 드러내는 진실은 우리가 불안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견고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기실 너무도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현대인의 삶의 본질이 ‘벌레’ 같은 실존임을 알레고리로 폭로했듯이, 이번 사건은 한국인의 삶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벼랑 끝에 매달려가는 것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아무리 성공적으로 적응해온 자도 한 걸음만 삐끗하면, 한 손만 잘못 짚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는 곳이 한국 사회다. 이번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이 지난해에 일어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이유는 송파 사건이 우리 사회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면, 서초동 사건은 시스템 자체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서초동 사건은 시스템에 누구보다도 잘 적응해온 자의 비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훈적이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기초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런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불안은 우리 사회의 기본 정조다. 어린아이도 불안하고, 청년도 불안하고, 대학생도 불안하고, 중장년도 불안하고, 노인도 불안하다. 실업자, 노동자, 농민, 회사원, 자영업자, 공무원, 전문직을 가릴 것 없이 이 땅의 모든 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한국 사회에서 불안이 극단적이고 편재적인 것은 그것이 실존적, 철학적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극단적 불안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권력이 무소불위의 전횡을 행사하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졸지에 ‘구조조정’, ‘정리해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경제적 테러를 일상적으로 겪게 되었고,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조정’, ‘정리’, ‘유연화’의 대상으로 내몰렸다. 그 결과 비정규직, 정규직에 이어 ‘엘리트 직장인’까지도 생존의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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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중앙대 교수, 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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