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13 18:45
수정 : 2015.01.13 18:45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소설가 김훈의 표현이다. ‘백화점 모녀가 알바생 무릎을 꿇린 사건’이나, 인턴사원 전원 해고 결정으로 논란이 된 위메프 사태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 김훈이 말한 ‘낚싯바늘’을 떠올렸다.
최근 변호사 업계에서 6개월간의 실무수습을 해야 하는 로스쿨 졸업생들을 ‘수습’이라는 명분 아래 값싼 전문인력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문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기존 변호사들에게는 로스쿨 졸업생들이 ‘기회’라는 한 변호사의 말을 듣고도 나는 그 낚싯바늘이 떠올랐다. 한 인턴사원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6개월씩 7차례에 걸쳐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하다 최종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자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인턴자본주의’, ‘알바공화국’이라는 표현은 밥벌이를 위해 낚싯바늘을 삼켜야 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비정한 현실을 드러낸다. 한 줄의 스펙을 위해서라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가 달린 낚싯바늘을 숙명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강제된 오늘의 취업 현실이다.
그리고 다시 송일국씨의 아내 정승연 판사의 글이 있었다. “정식 보좌관이 아니라 인턴에 불과”하고, “알바생에 불과했으니 당연히 4대 보험 따위 내주지 않았다”는 정 판사의 글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매우 부적절했다. 낚싯바늘로 표현되는 그 비정한 취업 현실을 건드린 것이다. 정 판사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글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알바’로 ‘인턴’으로 경계지대를 오가며 불안정한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냉소한 것이다. 송일국씨와 정승연 판사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가장 한가한 인턴에게” “임시 알바를 시”켰고, 알바비를 지급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인식은 다시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국회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인턴’에게 사적인 ‘알바’를 하게 한 것 자체가 문제다. 인턴에게는 어떠한 일이라도 시킬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틀린 것이다. “출근하니 커피·카피·코피”(<헤럴드경제> 2012년 7월3일치)라는 인턴의 현실은 국회라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연수생’이라는 말은 ‘내용 없는 형식’으로 ‘노동자’의 실질을 은폐하는 야만의 언어였다. 산업연수생은 더 이상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이방인에게 노예의 자리를 할당하는 언어의 방식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연수생’이라는 말로써 별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노동을 강제할 수 있었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폐지된 우리 사회에서 ‘인턴’이라는 제도의 위치는 어떤가? 인턴은 그 용어의 모호함과 포괄성으로 인해 일률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상당수의 인턴 제도가 자원봉사자와 노동자의 중간,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고용환경의 하부구조에서 비정규직에조차 진입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을 ‘인턴’이라는 이름의 쉬운 인력활용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인턴 과정의 목적은 ‘교육’이지 ‘근로’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그 실질은 강도 높은 비숙련 ‘근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수의 인턴 제도가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청년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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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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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제도가 제2의 ‘산업연수생’처럼 활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인턴이라는 용어는 교육이 목적이고 내용인 관계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교육의 기회에 노동이 제공되는 관계라면 예외 없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을 촘촘하게 꾸려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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