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1 18:42
수정 : 2015.01.2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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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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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티브이 드라마에서 도덕적 위기를 표상하는 집단은 대개 재벌 아니면 정치인이었다. 변호사, 기자, 검사가 이제 그런 집단의 보조자가 아니라 주역으로 소환되고 있다. 지난해 높은 시청률을 올리진 못했지만 법조인들은 관심 있게 보았다는 <개과천선>은 변호사와 로펌을 다뤘다. 드라마로서의 완성도, 그러니까 얼마나 스토리가 정교한지, 배역들은 잘 배치되었는지, 연기는 훌륭했는지를 따진다면 여러모로 아쉬운 데가 있었다. 조기종영 탓인지 후반부가 허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중요한 소송들을 다룬 점이나 ‘김&장’을 모델 삼아 대형 로펌의 교활한 활동방식을 핍진하게 보여준 점은 높이 살 만했다. 잘 편집해서 축약하면 대학 교양 수업의 교재로 삼을 만한 정도였다.
<개과천선>이 참여정부나 엠비(MB)정부 시기의 굵직한 소송을 다룬 데 비해, 최근 꽤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종영한 <피노키오>나 현재 방영중인 <펀치>는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배경으로 한다. <피노키오>는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은 기자들의 취재 관행을 떠올리게 하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사이의 추악한 권력게임을 다루는 <펀치>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낙마 과정에서 있었던 지저분한 추문을 연상하게 한다. 아마도 그 추문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에 나타난 검찰의 패덕은 너무 사악해서 그저 드라마 속의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드라마들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티브이 드라마 제작자들이 자신들과 가까운 기자 집단에 대해서는 꽤 너그럽다는 것이었다. <개과천선>이나 <펀치>는 법조인들의 추악함을 여과 없이, 때로 과장을 무릅쓰며 가혹하게 묘사한다. 이에 비해 <피노키오>는 “팩트보다는 임팩트”를 추구하며 보도 윤리에 무관심하거나 부주의한 기자들의 취재 문화를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기연(奇緣)과 러브스토리로 끊임없이 초점을 흐리더니 결국은 한없이 따뜻하고 공감 어린 마음으로 기자들을 묘사하는 쪽으로 흘러가버린다. 아마 제대로 된 기자라면 <피노키오>를 보며 훈훈한 감정에 젖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도덕적 프로타고니스트가 되는 조건이 매우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개과천선>에서는 주인공이 선한 변호사로 변하기 위해서는 사고로 기억을 상실해야 했다. <피노키오>에서는 기자가 진실과 팩트를 전하기 위해서는(대중에게 그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게 되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질병을 앓고 있어야 했다. <펀치>에서는 출세욕에 불타는 무자비한 검사의 ‘개심’(엄밀히 말하면 개심에 못 미치지만)을 위해서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이라는 낡은 테마가 필요했다.
이런 개심의 조건은 드라마 작법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치졸한 것들이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의 고충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지옥도를 그리는 것이 아닌 한, 선한 기자나 변호사 혹은 검사가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직종에 도덕적인 이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가 너무 낮아졌으며, 그래서 기억상실, 가상의 질병, 시한부 선고라도 동원해야 신빙성을 얻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마도 어떤 작가가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30년 넘은 원전의 위험을 알리는 드라마, 또는 보험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보험학과 교수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쓴다면, 양심적인 교수가 떡하니 등장하는 편보다는 죽음을 앞두었거나 기억상실에 걸린 쪽이 일반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전문직 엘리트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이렇게 바닥 밑으로까지 내려앉은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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