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시간에게 시간을 주라’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한달여 전에 라디오의 음악 방송 진행자에게서 얻어들은 말이다. 그 말이 그곳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일상이 너무 바빠서 시간을 요령 있게 써야 한다는 부담을 늘 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방학을 맞아 집에서 지내고 있는 딸아이가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갈 채비를 하는데, 버스 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녀석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차를 놓치면 다음 차까지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기에 아이에게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 아이는 버스가 멀리 송광사에서 지금 출발했기 때문에 10분 이상 여유가 있다고 했다. 시에서 스마트폰으로 시내버스의 운행 상황을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자동차 박람회에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가 선을 보였다고 한다. 차가 알아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뒤 좌석을 마주보게 하여 실내를 거실처럼 꾸밀 수도 있다고 했다. 티브이에서 그 소식을 전하는 진행자는 사람들의 생활이 좀 더 편해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차가 실용화되면 인간의 삶은 과연 더 여유롭고 편해지게 될까. 마음을 비우고 차창으로 스치는 바깥 풍경에 눈을 맡겨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거나 차에 설치된 티브이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새로운 기계를 소개하는 상품 광고에는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새로운 기술은 기업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서 개발된 것들이어서 인간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돈을 위한 기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계의 성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된다는 전제를 두고 일을 계획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욱 여유롭거나 편하게 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멀리, 더 빨리 움직이기 위해 이전보다 더 바빠졌고,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점령해버린 것을 보면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게 바쁘다. 끊임없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일을 계획하고 오감을 동원해서 자극을 입력한다. 우연한 것들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길을 걸을 때조차 걷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말이나 문자를 주고받거나 영상을 보거나 기계가 재생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한밤중에도 기계의 힘을 빌려 밖의 누군가와 소통한다. 밤과 낮의 차이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은 밤과 낮이 정확히 반반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낮이 활동을 위한 시간이라면 밤은 정리하고 소화하고 침잠하는 시간이다. 소화할 틈도 없이 음식을 계속 먹기만 하면 배탈이 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정신도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사려 깊고 현명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숙려하고 침잠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젊은 사람들의 말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단순한 감정을 보여주는 단문 일색이고, 그 감정의 강도를 나타내기 위한 욕설이 일상어가 되어 간다.
|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