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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1 18:41 수정 : 2015.02.01 18:41

제프리 스털링은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다. 2006년 <뉴욕 타임스> 기자가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중앙정보국의 공작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을 출판했고, 수사 당국은 공작을 담당했던 스털링을 정보 유출자로 체포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을 비롯한 비중 있는 인물들이 증인으로 참석한 재판이 4년 정도 이어졌다. 1주일 전 스털링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었다. 간첩죄를 비롯한 9개 항목이 적용되었고, 아마도 그는 10년 이상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승인받지 않은 정보 유출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수사하고 재판하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정보관리의 주체인 정보기관이 공개해도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기록에 관한 법률도 있고, 비밀정보 관리에 관한 법률도 있다. 법이 있으나 마나고, 불법을 저질러도 그것이 불법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법천지의 나라다. 이명박 회고록은 그런 참담함의 실상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회고록에서 남북관계 부분의 특징은 무능을 이념으로 덮으려고 애를 썼다는 점이다. 정치적 의도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착각과 무능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접촉을 왜 민간 비선에 맡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취임식의 북한 대표단 참석 문제는 어떤 목사님이 주선했는데 거부했다고 한다.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나간 싱가포르 접촉 역시 이 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대북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 주선했다. 1971년 박정희 정부의 비밀접촉부터 남북대화의 역사에서 비공식 비선이 이렇게 설친 적은 없다.

민간 비선이 끼어들면 비밀이 유지되기 어렵고 혼선이 발생하고 불신을 증폭시킨다. 왜 남북대화가 실패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비공식 접촉에서 발생한 혼선을 공식 접촉에서 수습을 못했기 때문이다. 남북 대화에 응하지 않은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민간 비선에 놀아난 것은 무능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인사가 서울을 다녀간 것도 충격적이다. 남북대화의 역사에서 해외공작 담당자를 협상 파트너로 삼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엽기적인 일이고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의 사유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왜 정상회담 대화록을 30년이 지나야 공개하는지 아는가? 그것이 현재의 외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자랑하고 변명하고 싶지만 민감한 정보 사항에 관해 관련 기관의 검토를 거친다. 그러나 이명박 회고록은 미국, 중국, 일본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따옴표를 친 채 문단 그대로 인용했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옆에 놓고 그대로 베낀 것이다. 3급 혹은 2급 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 문서를 그렇게 소지하고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다. 비밀취급에 관한 도장이 안 찍혀 있다면 그것 또한 불법이지만 말이다.

대통령의 회고록은 정책결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4대강 공사처럼, 자원비리처럼 국가정보도 그렇게 사유화했고, 그 후유증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제프리 스털링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그의 행위를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이명박 회고록을 정치적 공방에 앞서 국가와 정보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애국을 앞세우는 보수 정부가, 국가에 해를 끼치고 실정법을 위반한 이번 사건을 법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믿는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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