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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2 18:36 수정 : 2015.02.02 18:36

이번 연말정산 사태는 세금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증세는 없다더니 졸지에 세금이 늘어난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분노의 파도는 정부를 덮쳐 대통령 지지율이 3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소급입법을 추진하고 있고 가난한 지역가입자들이 큰 부담을 지는 건강보험료의 개혁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공제 방식을 조용히 바꾼 정부의 세제개혁은 실패가 예고된 것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1조원이라도 세수를 늘리려고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 후폭풍은 엄청났다. 정부는 이번 개편의 부담이 평균적으로는 상위 13퍼센트에 속하는 소득 5500만원이 넘는 고소득층에 누진적으로 돌아간다고 강조했지만, 화가 난 월급쟁이들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근로소득공제 축소로 상당수 저소득층조차 세금을 더 내게 되어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 와중에 야당은 세금 폭탄 운운하며 정부를 공격하기에만 바빴고, 보수언론은 늘어난 세금만 강조하며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에 대한 저항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신년 연설에서 부자 증세로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선언하여 박수를 받은 오바마 대통령도 세금에 대한 분노에 맞닥뜨렸다. 고소득층이 주로 이득을 보는 대학학자금 저축계좌의 세금감면 혜택을 없애겠다는 그의 제안은 발표한 지 며칠 만에 철회되고 말았다. 정부의 계산과 달리 이 계좌를 가지고 있던 수많은 상위 중산층도 이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현실에서 증세는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제 고소득층의 세금조차 올리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복지는 공짜가 아니며 형편이 나은 이들이 비용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정산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되었다면 일반적인 경우 당신은 충분히 고소득자라는 뜻이며, 모두의 미래를 위해 조금 더 부담을 지는 것이 맞다. 1년에 20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근로소득자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는 슬픈 사실을 잊지 말자.

하지만 이번 연말정산의 방향이 옳다고 해도, 세금이 늘었다고 화내는 이들에게 마냥 눈을 흘길 수만은 없다. 연봉이 조금 높다 해도 재산이 많지 않다면 모두들 비슷한 노동자가 아닌가. 현실을 둘러보면 임금에 비해 이윤은 높아졌는데 법인세 부담은 낮아졌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는 여전하다. 또한 임대료 등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의 노력은 후퇴했고, 세수가 부족하다면서 정부는 기업의 상속세를 낮추려 애를 쓰고 있다. 게다가 전 대통령은 강바닥과 해외에 세금 수십조원을 낭비하고도 혼자 자화자찬이다. 결국 이번 연말정산에 사람들이 화가 난 근본적인 이유는 부족한 설명이나 언론의 부추김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과 정부의 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땀 흘려 일하는 월급쟁이들이 흔쾌히 세금을 내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욱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제개혁이다. 정부는 먼저 온갖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부터 강화하고 부동산 등 재산에 대한 세금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여러 감세조치들을 철폐하고, 수억이 넘는 소득에 대한 최고소득세율을 인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과 함께, 일해서 많이 버는 이들부터, 그래도 모자라면 덜 버는 수많은 이들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 끔찍한 불평등의 시대에 꼭 필요한 복지를 위해 이런 증세를 추진한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이해 못 할 일일까. 이번 사태로 정말 걱정되는 것은 시민들의 편이 갈리고 복지국가를 향한 의지가 약해지는 것이다. 공평한 증세와 더 많은 복지를 더 크게 외쳐야 할 때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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