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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남쪽을 방문한 북한 ‘특사 조의방문단’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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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회고록에 담긴 대통령의 경박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을 온 북한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만난 때는 2009년 8월23일. 회고록에 따르면 우리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닌 통일부를 통해 공식 요청하는 절차를 밟게 하느라고 하루를 더 기다리게 한 다음 청와대를 들어올 때도 특별대우 없이 일반 출입 절차를 밟게 했다. 접견 중에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는 북의 주장에 대해 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통령은 접견을 마치고 나가는 김 비서에게 “이제 앞으로 좀 잘하세요”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웃음이 피식 나오는 대목이다. 뭘 말하자고 회고록에서 이런 걸 묘사할까? 어쩐지 촌스러워 보이고 예절도 모르며 애걸하는 북한에 제대로 망신을 주었다는 무용담인가? 그렇게 북한의 특사를 홀대한 것이 외교적으로 잘된 일인가?
쌀, 옥수수, 비료 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해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건 또 뭔가?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한 당사자인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은 “북한이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경제지원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는 “그런 비밀접촉이라면 내가 회담에 응했겠느냐”며 “(대통령 주변의) 일부 관료들이 북한의 말을 오해하고 정상회담의 판을 깬”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회고록에선 “정상회담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북한이 요구한 지원을 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정반대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인들을 마치 북한을 만나기 위해 줄서는 비굴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유달리 북한에 엄격했던 각하 자신만이 원칙 있는 정치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더 궁금해진다. 하지도 않을 정상회담이라면 왜 북한과 특사를 교환하고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비밀접촉을 하고 청와대 비서관을 중국 베이징에 보내 은밀하고 낯 뜨거운 대화를 주고받은 것인지, 그 이유가 아리송하다. 2011년 베이징 남북비밀회담이 겨우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고, 여기서 돈봉투가 동원되었다는 건 북한에 단호했던 대통령답지 못한 태도 아닌가? 그런 비밀회담이 안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았다는 건 북한을 제대로 몰라서인가, 아니면 북한에 다른 걸 기대했기 때문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대해 이처럼 비논리적인 설명으로 일관한다면 국민이 비참해진다. 이런 식으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대북정책을 합리화한다면 국민 수준을 한참 얕보는 경박한 처신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제 와서 “애걸하는 북한을 만나 주었다”는 식으로 그 내막을 까발리는 건 아예 남북관계를 작살내서 “정상회담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박근혜 정부에 던져주려는 심보 같다. 이 때문에 회고록이 나오자 청와대는 회고록에 남북관계에 부담을 주는 내용이 실려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현 정부가 봐주기에도 딱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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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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