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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8 18:46 수정 : 2015.02.08 18:46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최근 발언이 대학사회에 커다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취업이 인문학보다 우선하며, 취업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는 교육부 수장이 이런 근시안적인 교육관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취업이 인문학에 우선한다’는 기상천외한 발언은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전경련 회장의 입에서라면 몰라도, 교육부 장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가진 교육부의 수장이라면 오히려 학문과 지성의 이름으로 그런 말을 하는 자의 무지와 단견을 꾸짖어야 마땅하다.

취업을 중심으로 대학을 재조정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취업중심대학론’은 이 나라의 대학과 학문, 나아가 국가 발전과 청년의 미래에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가뜩이나 죽어가고 있는 한국 대학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명박 정부가 취업률을 잣대로 대학평가를 시행한 이후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분야가 고사 직전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런 천민자본주의적 대학평가가 최고학문기관인 대학을 초토화시킨 결과 한국 대학은 세계적 학문 수준에 더욱 뒤처지게 되었다. 우리처럼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하나도 없는 현실은 우리 학문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나라의 최고학문기관을 취업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발언은 대학과 학문에 대한 선전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의 논리와 기업의 이해에 따라 학문세계를 재단하겠다는 것은, 대학 시장화를 규탄하는 시카고대학 교수들의 말을 빌리면, “그 자체가 인간정신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시장 이데올로기가 학문적 삶의 심장에 침투해 들어온 것이 미국 대학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제니퍼 워시번)이라는 경고는 결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황 장관의 취업중심대학론은 또한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이 지닌 본질적인 기만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그것은 빈곤문제의 제도적 해결을 위한 법안에는 매번 반대표를 던지면서도 ‘이웃돕기’ 행사에는 요란하게 앞장서는 정치인의 행태와 닮았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한국 보수의 타고난 장기다. 청년실업 문제는 학생이 취업준비를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될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구조적 문제이기에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다. 기업 수익금을 쌓아놓고도 고용을 확대하지 않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늘려 임금착취를 일삼는 기업에 고용 확대와 정규직 고용을 강제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경제구조를 개편하는 등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생색내기로 국민을 속이는 정부의 기만성이 대학 영역에서 재현된 것이 취업중심대학론의 본질이다. 청년들을 실업자로 내모는 경제구조를 만들어놓고 여기서 엄청난 이득을 취해온 가해자들이 오히려 그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파렴치하지 않은가.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가다머에 따르면 근대 대학의 탄생은 중세 대학을 지배하던 “교리해석과 직업교육에서 학문연구로의 이행”을 의미하며, 그 핵심은 “직업학교로서의 대학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학문과 직업을 분리한 것, 대학과 직업학교를 분리한 것 -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 학문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 그런데 오늘 21세기 한국에서, 대학을 다시 중세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시도가 취업률 제고라는 거짓 허울을 쓰고 번져가고 있다. 큰일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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