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1 18:47
수정 : 2015.02.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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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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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증세 없이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과 교육비로 인한 가계 빚은 최고조에 달하고, 청년 일자리는 최저임금조차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만 수두룩한데다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국민들의 부담이 최대화되어 있는데도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만 되풀이한다. 대통령이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염치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고, 대통령이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국민이 ‘우리’ 같은 서민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 기반인 대기업과 고소득자들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이 반성 없는 말을 되풀이할 때마다 배신감이 든다. 그러니 제발 국민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도 되풀이하지 않으면 좋겠다.
며칠 전, 공부방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한 뒤, 공부방 자원교사로 활동하던 대학생이 어두운 얼굴로 공부방에 와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모, 저 당분간 공부방 활동을 못할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평일뿐 아니라 주말 아르바이트도 해야 돼요. 세 모녀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올 7월이 돼야 법이 시행된대요. 게다가 부양의무제가 완전 폐지 된 게 아니라서 저는 혜택받을 가능성이 없대요.”
그 대학생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기초생활수급권자였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 진학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문대를 졸업한 언니가 취업을 하고, 재혼한 어머니의 재산이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잡히는 바람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취업한 언니가 버는 돈으로는 언니의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방세를 내기도 벅차고, 오래전 재혼한 어머니로부터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대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 대학생은 공부가 아닌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한다.
작년 연말, 정부와 정치권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구할 세 모녀 법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고 으스댔다. 마치 이제 세 모녀의 불행한 죽음은 더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법이 시행되는 것은 올 7월, 그때까지는 부양의무제로 인해 수급권을 박탈당했던 이들이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 손질된 부양의무제에는 여전히 대상자나 부양의무자의 집과 보험, 자동차 같은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조항과 담당 공무원이 근로능력을 추정해 소득을 산정하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수급권을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 불법수급 대상자를 줄인다며 강화한 부양의무제 때문에 2010년 155만명이었던 기초수급자는 지난해 134만명으로 20만명이나 줄었다.
2013년 10월, 정부는 복지 축소와 공약 불이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갑자기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초등 돌봄교실 확대와 유치원 누리과정 확대를 공표했다. 예산이나 구체적인 운영 문제는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으로 떠넘긴 채로 말이다. 초등 돌봄교실과 유치원 누리과정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은 작년 한해 동안 언론을 통해서 드러난 대로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무상급식, 무상보육 탓으로 돌리며, 국민들을 염치없이 손만 벌리는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올해부터 3, 4학년까지 확대한다던 초등 돌봄교실은 예산 문제로 없던 일이 되었다. 지자체나 지방교육청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학교 내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계약직 노동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막고 있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면서 사과 한마디, 변명 한마디 없다. 이제는 거짓말이나 국민을 향한 협박이 아니라 참말을 듣고 싶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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