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2.15 18:42 수정 : 2015.02.15 18:42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이제 곧 3월이다. 봄이 오니까 좋긴 하지만 방학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 올해 1학기에는 1교시 강의가 두 번 있는데, 그 학교는 1교시가 8시부터(!)여서 이제 6시에 일어나기 위한 훈련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르치는 나도 힘들지만 그 시간부터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또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까. 대학 2학년 때 오후 4시 이전의 강의는 못 일어나서 들을 수도 없었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고역이다. 새벽까지 놀고 싶은 나이에 새벽부터 교실에 앉아 있어야 되다니. 돈을 받고 일하는 처지에도 괴로운데 왜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이런 고역을 치러야 되는 걸까? 이건 분명 노동이 아닌가?

사실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제기는 있었다. 1967년 2월 이탈리아 피사대학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점거하면서 ‘피사 테제’라고 불리는 문서를 발표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학생운동의 방향을 바꾸게 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학생을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며 학생들에게도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학의 기능이 특권적인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에서 고도의 능력을 가진 노동력을 배출하는 것으로 변화했으며, 말하자면 양질의 노동력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이 된 대학에서 학생은 생산되는 상품이자 스스로를 그런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되었다는 논리였다. 학생이 사회가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우수한 노동력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대가는 지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는 주장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전개되던 사회운동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60년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노동자주의’라고 불리는 이론적/실천적 흐름은, ‘사회적 공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에 의한 지배가 공장이라는 공간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삼켰다는 견해를 제시하며, 생산 영역과 구분되던 재생산 영역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어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구성부분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즉, 공장노동으로 대표되는 생산노동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재생산노동도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페미니스트들이 내건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구호도 이런 관점을 통해 나타난 것이었는데, 모든 사회 영역이 공장이 된 이상 모든 사회적 노동에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대가 없는 노동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학생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이탈리아에서 학생들의 대학 점거가 확산되는 가운데 널리 공유되어갔다. 물론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학생들에 의한 대학 점거는 경찰력에 의해 해제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하나의 사회적 공장으로 대학이 필요했던 정부는 학생 임금 대신 대학교육을 무상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1970년대 초반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대학교육의 무상화가 실시되는데, 이는 ‘68혁명’이라고 불리는 학생 반란의 ‘소극적’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노동자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가에 대한 구걸이 아니듯이, 노동력 상품 생산자인 학생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비싼 등록금 문제가 무엇보다 학생들을 고립된 ‘개인투자자’로 만들어 배움이 지니는 사회성을 파괴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학생들이 연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고등교육의 사회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