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6 18:33
수정 : 2015.02.16 18:33
국무총리 이완구.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몹시 쓰라리다. 인준안 국회 표결 당일인 2월16일치 아침신문에 난 ‘청문회 이후 충청권 민심 돌변’ 기사를 보면서 인준안이 통과될 것 같은 판단이 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좀 서글픈 고백이지만, 나는 기사의 표제로 나온 ‘충청 민심에 화들짝’이라는 표현만 보고서는 정반대의 상상을 했던 것이다. 청문회 첫날을 마친 뒤 충청권 민심이 ‘우리 지역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였구나’ 화들짝 놀라고, 전국적인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이 부끄러워 돌변했다는 기사를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읽어보니 정반대였던 것이다. 인사청문회 이전까지 충청지역의 이완구 총리 인준 찬성 여론이 33.2%였다가 인사청문회 하루 만에 66.1%로 돌변하는 민심의 변화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지역감정은 퇴행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하나의 정치적 ‘오성’의 영역에까지 올라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악몽 같은 ‘초원복국집 사건’, 권력기관들이 정치공작을 모의한 사건이 폭로되었는데, 거꾸로 이것이 영남권 민심을 결집시켰고, 정권을 창출했다. 그리고 그 주역이 22년이 지난 지금 이 정권의 2인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가장 강력한 동력은 아마도 그를 ‘장로’로 부르던 개신교 신자들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박근혜의 당선에는 분명 ‘불행하게 죽은 부모를 둔 가련한 딸’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역색, 종교색, 이미지, 이들은 얼마든지 조작과 변형이 가능한 ‘가상의 실체’다. 그런데, 이들에게 우리들 실제의 삶이 결정되고 유린당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체제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우리들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조건이 되어 있다. 이명박 시절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거대한 손상과 결딴나버린 4대강과 엉터리 자원외교에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가련한 딸’은 지금 너무 무능해서 도무지 남은 3년 동안 펼쳐질 첩첩산중을 어떻게 돌파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천막농성은 여러 차례 기습한파가 찾아온 올겨울을 관통하여 53일째를 지나고 있다. 한국전력은 우리가 내건 3대 요구안에 아무런 답이 없고, 주민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속속 이어져 벌금폭탄과 집행유예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 농성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드문드문 읽으며 어르신들과 소일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이 책의 한 대목을 낭독할라치면 어르신들의 눈가가 빨개지고, 금세 눈물을 흘리곤 해서 소개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인양조차 하지 못한 세월호, 온갖 방해와 협잡으로 진상조사의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 이 세월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굴뚝에서 농성중인 쌍용차 이창근, 김정욱과 스타케미칼의 차광호, 청도 삼평리 농성장의 할머니들. 지역색과 종교색과 이미지 정치가 방기해버림으로써 자본과 국가의 폭력에 직접 노출된 이 많은 일들을 정치가 어떻게 바로잡아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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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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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이완구를 ‘피와 살이 튀는’ 민중들의 삶의 현장으로 데리고 다닐 책임은 야당에 있다. ‘호남총리론’으로 총리 자리에까지 지역색의 불을 지핀 문재인 대표는 여론조사로 승부를 보려 했지만, 바로 그 여론조사에서 ‘충청권 민심’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2015년이라는 시간대에도 지역색에 발목 잡혀 허우적거리는 한국 정치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정치는 이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치에는 지금 수많은 이들의 실제의 목숨이 걸려 있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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