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22 18:44
수정 : 2015.02.22 18:44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정의 가운데 하나는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곧 정치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영역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가장 작게 공적 영역을 정의하는 방법은 정부와 국가의 구성 및 운영에 관련된 일을 공적 영역으로 규정하고 그 나머지는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 공적 영역을 가장 크게 정의하는 방법은 개인 및 가족과 관련된 공간을 사적 영역으로 먼저 규정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공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최대 정의에 따르면 정부, 국가뿐만 아니라 회사, 학교, 언론 등 개인과 가족을 벗어난 모든 공간이 공적 영역에 속하고 정치는 이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넓어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적 영역은 무한대로 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직과 관계없는 연예인도 불법 도박을 하면 공인이라 불리며 더 가혹한 비난을 받고 개인간의 사적인 대화도 녹취를 통해 에스엔에스상에 공개되었을 때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공적 영역이 자꾸 커져가는 현상은 두 가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다수의 전제(tyranny of majority)로서 개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수의 의견에 지배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과부하(ethical overburden)로서 늘 공적 영역에 나서는 사람이 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감에 짓눌려 쉽게 지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결국 사적 영역에의 침잠에서 생겨나는 개인의 창의성을 고갈시키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저해한다.
그러나 무한대로 팽창하는 공적 영역에서 생겨나는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공간을 채울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빈곤하다는 사실이다. 공공성은 개인의 이해를 넘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정함을 추구하는 태도, 공동체의 일에 헌신하는 이타적인 자세를 말한다. 서양의 고대는 가정을 경계로 공과 사를 구분한 다음 공적 영역에서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선이 일치하는 좋은 삶을 추구했다. 반면 동양에서 공공성은 가정이라는 기초적인 장에서 출발하여 공적 영역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동서양 모두에서 공공성은 어떻게 하면 개인들이 사적 이해를 뛰어넘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게끔 규범과 관습으로서의 제도를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었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드러나는 병역과 재산 의혹 등은 후보자들이 지금까지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이런 개인 차원의 합리적 선택이 공공의 이익과 일치한다면 그들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개인과 가족의 이해가 동심원적으로 확장되어 지역주의가 되었고 권력을 사유화한 배타적인 지역 패권주의가 국가 이익이라는 공공성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공정한 규칙과 공동의 이해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개인들로 가득 채워진다면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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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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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공동체는 공공성의 가치를 실천하는 이타적 시민이 많을 때 안정되고 발전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 대안은 공적 영역의 무분별한 확장은 자제하되 사적 영역에서의 성찰과 공적 영역에서의 실천을 통해 공공성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을 위한 이기적 선택보다 집단을 위한 이타적 선택이 더 우월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공정, 배려, 관용 등의 규범을 교육을 통해 내면화하고 이와 같은 가치를 비웃고 우회하려는 무임승차자를 막는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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