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25 18:42
수정 : 2015.02.2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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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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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졸업식의 계절이다. 교수에겐 쳇바퀴처럼 돌아오는 행사이지만, 졸업식장 분위기는 매년 무거워져 가고 있다. 그런 무거움은 졸업과 더불어 좋은 정규직 직장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무너진 데서 연유한다. 많은 이들이 졸업 후 무기(無期)로 전환될지도 알 수 없는 계약직을 얻게 되는데, 임금 수준마저 대학시절 ‘알바’를 풀타임으로 뛸 경우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별로 높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다소 냉정하게 느껴질지라도 기존의 인식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용돈이어야 기본적인 사회생활과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물어보면 대략 60만원 정도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학비나 주거비를 제외하고 차비, 식비, 통신비와 이런저런 약간의 소비에 이 정도 비용이 든다. 괜히 ‘삼포’에 연애가 포함되는 게 아니다. 데이트 비용마저 근심거리여서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엔 그런 비용을 큰 부담 없이 해결해줄 수 있는 부모가 이제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생이 최저임금 수준의 알바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전문대와 4년제를 합쳐 대략 350만명의 대학생 가운데 대다수가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실정이다. 그리고 대학은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착시를 유발하며 파트타임 노동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공급되도록 돕는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바를 중계하는 ‘알바몬’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얼마나 다양한 직장이 얼마나 다양한 유형의 알바 노동과 만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알바몬을 훑어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에서 음식업, 각종 프랜차이즈 산업, 판매서비스업이나 유통업 등이 과연 대학생 알바 없이 존립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학생 알바가 없다면 방대한 야간 노동 인력과 주말 노동 인력을 어떻게 그토록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학생 알바를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 전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시적인 일로 여기며 굳이 따로 떼어 ‘알바’라고 불러왔지만, 그러기엔 알바는 이미 너무 광범위하고 의외로 장시간 노동이며, 그 기간 또한 대학 4년 또는 전문대 2년에 딱 한정되지도 않는다. 한두 번의 휴학, 군복무, 취업 시험 등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하면 20대 거의 전부를 이렇게 보내는 이들도 많으며, 졸업 전후 임금 차도 크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세칭 명문대를 다니는 부유층 자녀가 아니라면, 대학생이 알바를 한다기보다 노동자들이 공부를 한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알바하던 대학생이 졸업 후 괜찮은 정규직을 얻는 일이 희귀해졌으니, 졸업식은 낮에 공부하고 저녁과 주말에 일하던 노동자가 낮에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전환의 예식이 된 셈이다.
물론 알바하는 대학생과 공부하는 청년노동자 사이에 폭넓은 점이지대가 존재한다. 그렇더라도 현저히 변한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와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 알바라는 말을 버리고, 대학의 의미 또한 일하면서 공부하는 곳으로 재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대학생 편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교수 편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게 될 것이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의 재직 기간도 20년 남짓인 세상에서 청년기 칠팔년의 파트타임 노동 기간은 결코 노동을 예비하는 기간이 아니라 온전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이므로, 대학도 우선 그들에게 이 점과 관련해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며, 문학도 철학도 사회과학도 그 노동 현장의 관점에서 읽고 느껴야 할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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