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1 19:28
수정 : 2015.03.01 19:28
예멘은 무정부 상태다. 대통령은 쫓겨났고, 정부는 없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대사관의 문을 닫았다. 공권력이 사라지면서, 각자도생의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다. 북부는 후티족이 차지했고, 남부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중부는 알카에다 아라비아지부가 점거했다. 나라가 완전히 망했다.
예멘은 어떻게 망국에 이르렀을까? 통일이 원인이다. 예멘은 한번은 합의로, 다른 한번은 전쟁으로 통일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합의 통일’의 후유증이 ‘전쟁 통일’을 불렀다. 1990년 양쪽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통일을 합의했을 때, 그것은 그들만의 정치적 거래였다. 화해가 없는 통합은 물과 기름처럼 양쪽을 겉돌게 했고, 오랜 세월 싸웠던 양쪽의 군대는 통합 과정에서 파열음을 냈다. 절반씩 차지한 권력 나누기는 오래가지 않았고, 통일 이후 발견된 석유는 오히려 갈등의 불씨였다. 쌓여 있던 갈등이 한꺼번에 펑 하고 터지면서, 1994년 전쟁이 일어났다.
누가 ‘전쟁에 의한 통일’을 말하는가? 그런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 승자인 북예멘은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 더 이상 권력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남부의 힘 있는 자리는 모두 북부 출신들이 장악했다. 폭력은 합의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남부 분리주의 운동은 처음에 민주적인 시위로 시작했지만 점차 무장투쟁으로 발전했다.
분단 시대, 북예멘이나 남예멘 모두 통일이 희망이었다. 정치인들도 언제나 통일을 얘기했고, 시인도 소설가도 가수도 통일을 노래했다. 통일, 그날이 오면 세상이 달라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통일은 악몽 그 자체였다. 폭력이 줄지 않고, 경제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주권이 국민에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법적으로는 통일이 되었는데,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부족과 부족 사이, 그리고 지역과 지역 사이 분열의 골이 더 깊어졌다. ‘질서의 공백’ 지대로 중동의 모든 강경파들이 모여들었다. 남부 분리주의 세력의 일부가 알카에다 아라비아지부를 만들었고, 이슬람국가(IS) 충성파도 증오의 틈새에서 자라났다. 사람들이 납치되고, 정치인은 암살되고, 거리에는 자주 폭탄이 터진다. 이런 통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흔히 통일 사례로 독일을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인 예멘 사례도 있다. 예멘의 통일 이후 20년은 통일만 되면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 안의 민주주의와 우리 안의 인권과 우리 안의 화해를 부정하면서, 어떻게 통일이 희망일 수 있을까? 예멘처럼 그것은 망국의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통일’은 죽은 말이 되었다. 증오를 담은 삐라를 뿌리면서, 5·24 조치를 유지하면서 ‘통일대박’을 말할 수 있을까? ‘아무나 하는 자리’로 전락한 통일부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영역에서 ‘통일 준비’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남북 교역은 제로이며, 경쟁적으로 군비 증강에 나서는 현실에서 통일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말이 아니다. 죽은 말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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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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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둘이 셋이 혹은 여럿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통일은 폭력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 과정이다. 통일은 또한 독재가 아니다. 다수의 합의와 소수의 존중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 여기서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통일이라는 말이 다시 숨을 쉴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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