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2 19:09
수정 : 2015.03.02 19:09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바로 5100개가 넘는 매장에서 130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월마트다. 월마트는 총매출액 50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지만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극단적인 저임금, 저비용으로 기업만 살찌우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이른바 월마트 모델의 원조였다. 그 월마트가 최근 시간당 최저임금의 인상을 발표하여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악의 제국’이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일까.
월마트의 이번 임금인상은 먼저 노동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작년 약 30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났고, 특히 2012년 이후 하위 10퍼센트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여 최하위층 노동시장이 타이트해졌다. 따라서 평균 50%에 이르는 이직률과 엉망인 서비스로 고심해온 월마트도 낮은 임금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갭이나 이케아는 이미 작년에 임금을 인상했고, 코스트코 등은 경쟁 업체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지불하며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회사 안팎의 압력이다. 2011년부터 월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간당 15달러로 임금을 인상하고 노조를 허용하라며 블랙프라이데이에 시위와 파업을 벌이며 투쟁해 왔고, 시민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연설에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최저임금만 받고 한번 살아보라고 일갈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월마트는 1998년 한국에도 진출했지만 영업권을 이마트에 매각하고 8년 만에 철수했다. 현지화 실패가 주된 이유였지만, 안방시장을 지킨 토종 대형마트들은 노동자를 쥐어짜는 데에도 월마트 못지않았다. 현재 이마트의 시급은 5670원으로 생활도 힘든 최저임금 수준보다 고작 90원 높고, 몇몇 마트는 법정 휴식시간을 줄이기 위해 하루 7시간 근무를 시킨다. 게다가 이마트는 2013년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사찰하여 분노한 시민들의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후 이마트는 비정규직 9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조건이 악화되어 많은 노동자들의 소득이 비정규직 때보다 더 낮아졌다.
마트 밖에도 가난한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노동자 4명 중 1명이 한 달에 127만원도 벌지 못하며,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230만명이 넘는다. 현실이 이러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준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전체의 수요와 생산성도 높이는 길이지만 영세자영업자들에게는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월세 부담이나 대기업 가맹점들의 로열티를 낮추고, 고용보험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하는 등 여러 노력들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마트를 포함한 대기업들에 하루속히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비정규직을 축소하라고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일이다. 작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중이 40퍼센트가 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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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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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관리직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월마트 최고경영자가 된 더그 맥밀런은 이번 임금인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올라갈 수 있는 능력주의의 사다리를 만들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임금인상이 경제 전체로 확산되어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회복이 가속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도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며 “임직원의 업무만족도가 높아져야 고객을 최고로 섬기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이마트가 고객을 섬기기 전에 자신의 노동자부터 잘 챙기기를 바라고 있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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