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몇번 곱씹게 되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말이다. ‘값싼 박수’, ‘도발’과 같은 자극적인 용어는 누굴 향한 것인가?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을 꾸짖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말고 누구이겠는가? 졸지에 이 지도자들은 값싼 박수나 받는 도발자가 되고 말았다. 반면 일본의 아베 총리는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품격 높은 지도자가 되었다. 3·1절 아침에 비수처럼 꽂히는 이 말. 우리의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 소리다. 작금의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의 길을 찾아내라는 소리다. 이 역사의 본질에 정신을 집중하라는 각성의 소리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필연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게 되어 있고, 그 결과 언젠가 미-중 간에는 분쟁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은 20세기 초에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의 변화를 방관하다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냉전을 감수하는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러니 21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변화를 방치하지 않고 사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재균형 전략’, ‘아시아로의 회귀’를 표방한다. 그런데 한국이 과거 역사에 매몰되어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 참여를 주저하고 있으니 이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온 거친 협박이다. 어느 정도 한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던 미국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한국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값싼 민족주의 감성이라며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제 과거 역사라는 중고차는 도매금으로 폐기처분하고 그 대신 값비싸고 안락한 신형차에 탑승하라는 이야기다. 지난해에 미국은 얼마나 급했으면 한·미·일 삼국의 국방차관이 모여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하기로 한 계획을 무산시키고 펜타곤의 하급관리를 보내 약정서에 서명을 받아갔다. 조인식도 하지 못한 일종의 ‘택배기사 약정’이다. 그만큼 미국의 호흡이 거칠 뿐만 아니라 급하기까지 하다. 개발에 성공하지도 못했고 한국에 배치할 물량도 없는 사드 요격미사일 체계를 벌써부터 한국에 배치하려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바로 그런 미국의 조급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의 부상 속도가 너무 빨라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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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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