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4 19:12
수정 : 2015.03.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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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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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촌에서 나고 유년을 보냈다. 국민 절반이 농촌에 살던 시절이었으니 우리 세대에겐 흔한 일이다. 그래도 그 시절 기억은 누구나 각별한 법.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날 때였으나, 동네는 고단한 활기가 넘쳤다.
명절 귀향은 그때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그러나 설에 다시 찾은 고향은 더 쓸쓸했다. 부쩍 늙은 부모님도 그렇고, 지역에서 느끼는 생명력이 나날이 약해지는 탓이다. 이제 많이 바뀌어 도시를 이루었지만 쇠락한 농촌의 분위기가 짙게 밀려들어와 있다.
어디라 없이 농촌은 ‘취약’ 지역이, 그리고 농민은 ‘소수자’가 되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농가 인구는 6퍼센트밖에 안 되는데다 세명에 한명꼴로 일흔을 넘겼다. 선거구 조정 때는 모를까, 중국 농업과 자유무역협정을 한다 해도 남 일처럼 조용하다.
그래도 날로 더한 삶의 어려움조차 무덤덤하기는 어렵다. 교육과 의료, 교통 등등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노인 때문에라도 복지 부담이 난감하다. 경제와 효율만 걱정한다면 농촌을 애물단지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취약한 의료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진작 사라졌던 ‘무의촌’이 되살아날 정도다. 면 소재지마다 군대 가는 것을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가 있으니 말 그대로의 무의면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붙박이 의사는 읍이나 되어야 한둘 있을까, 대부분 면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공중보건의사를 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소식도 들린다. 의대생 중에 군대 마친 사람과 여학생이 많아져서 그렇단다. 최근 6년 동안 30퍼센트 가까이 공중보건의사가 줄었다니, 곧 무의면이 여럿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심상치 않다.
요즘 교통이 어떤데 무슨 문제냐는 반론이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사실 많은 농촌에서는 멀어도 한 시간이면 큰 병원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대책이 따로 필요없다는 주장은 절반만 맞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이나 분만, 늘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 처지들이 있으니 다른 절반이 남는다.
간병과 돌봄이 더 큰 부담이니 의사만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많다면 사정은 뻔하지 않은가. 병은 많고 거동도 원활하지 않은데다가 큰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 당장 큰일이 나지 않는다고 그냥 둘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해결이든 예방이든 정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공중보건의사가 줄어드는 사태 때문에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많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오래된 관행과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더 비관적이다.
효율성 논리가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적고 집들은 멀리 떨어진, 이른바 과소지역에서 의료와 건강을 살피는 일은 효율과 거리가 멀다. 대상자 수로 보면 사람과 품, 또 돈은 얼마나 많이 드는가.
경제적 가치로는 말이 되지 않을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건강과 보건의료가 모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살든, 생산에 보탬이 되든 안 되든, 건강권은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돈과 사람이 모자란다고 허술한 의료안전망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진짜’ 소수자는 놔둔다고 할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장애인, 이주민, 성 소수자…. 사실 진작부터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외 없이 차별에 시달리고 위험에 노출되며 자주 스스로를 해친다.
원칙은 같다. 기본권을 누릴 사람에게 우선과 나중이 어디 있을까. 소수자든 아니든 보장받아야 할 건강권을 다시 차별할 수 없다. 어느 누구라도 삶과 죽음의 품위를 잃지 않게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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