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1 19:02
수정 : 2015.03.11 19:02
|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건 당시 젊은 생명과학자들이 줄기세포 논문의 사진이 조작되었음을 밝힌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몇달 전 어떤 대학원생이 올린 글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학위과정의 결과물을 논문으로 만들어 학술지에 제출했는데, 심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도교수가 연구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교수 두 사람을 공동저자로 올렸다는 내용입니다. 초고를 보낼 때 제1저자였던 대학원생의 이름은 뒤로 밀렸고요. 논문 작업을 주도했던 이 학생은 억울했습니다. 연구 실적이 필요한 교수들끼리 논문에 서로 이름을 끼워넣어 주는 건 명백한 잘못입니다.
이처럼 지도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하는 방식이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싶으면 대학원생은 어찌해야 할까요? 연구윤리 교과서에서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라 권합니다. 약자인 대학원생이 다 체념하고 견뎌내야만 한다면 그건 정의롭지 못한 일이겠지요. 반면에 언론 등에 제보하는 건 최후의 방법입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나, 대학원생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위에서 말한 두 극단 가운데 하나가 선택되지요. 순응하며 연구실에 남거나, (드물지만) 내부제보자가 되어 연구실을 떠나거나. 어느 쪽이든 불행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등 대학 구성원들 사이의 불화를 당사자에게만 맡겨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게다가 갈등은 일상적입니다. 배후에 항상 악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데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갈등은 생길 수 있습니다. 대학이 건강해지려면 이렇듯 늘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거나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옴부즈맨 제도입니다. 대학에 옴부즈맨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지도교수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대학원생이 옴부즈맨을 찾아갑니다. 옴부즈맨은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해법을 모색합니다. 이를테면 학생이 다른 교수의 지도로 학위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오해에서 비롯됐다면 옴부즈맨은 이를 학생에게 객관적으로 잘 설명해줄 수 있겠지요. 연구실의 갈등이 해소되면 결국은 지도교수도 수혜자가 됩니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대학과 연구기관의 핵심 부서로 자리를 잡았지요. 의뢰인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옴부즈맨은 비밀을 지켜가며 이를 해결하려 합니다. 조사 결과로 말미암아 대학 총장이나 학장이 곤란하거나 난처한 처지에 놓인다 해도, 그 때문에 옴부즈맨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학생들만 옴부즈맨에 의지하는 게 아닙니다. 교직원들도 불공정한 대우 등 다양한 이유로 옴부즈맨을 찾습니다.
학교 구성원, 특히 청년 학생들이 행복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대학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교수와 학생은 갑을관계가 아니라 사제지간입니다. 옴부즈맨은 대학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조력자입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되려면 아직 시간과 노력이 좀더 필요하리라 여깁니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옴부즈맨을 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학 사회가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에 공을 더 들여야만 합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