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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8 18:58 수정 : 2015.03.18 18:58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나는 참 복이 많다. 쉰살이 넘을 동안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멀리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시 중구 관동, 송학동으로 개항장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청년기에 들어와 13년 동안 산 만석동은 일제강점기 병참기지로 시작돼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민과 7, 80년대 이농민들의 삶의 자리가 된 곳이고, 지금 살고 있는 강화도는 근대를 여는 관문이자 뼈아픈 역사현장이었다. 나는 내가 우리 근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복이 너무 지나쳤나? 그 도시가 명품이 되더니, 강화도마저 명품 섬이 될 판국이다. 시에서는 서해 5도 안의 168개 섬을 테마별로 특화 개발해 상품화하겠단다. 이제 마을을 넘어서 섬까지 통째로 팔아먹을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지자체장들의 속물근성에 소름이 돋는다.

인천은 지난해 9월 아시안게임을 치렀다. 시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 20조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거라고 광고를 해댔지만 남은 건 3조2378억원으로 늘어난 빚과 앞으로도 해마다 수십억원씩 들어갈 경기장 유지비뿐이다. 그런데도 시는 여전히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개발계획을 마구 쏟아낸다.

지난달 인천의 한 지역신문에 동구청장의 글이 실렸다. 동구청장은 그 글의 요지를 스스로 한마디로 요약했다. “동구를 팔아묵자”. 동구청장이 감동받아 감천문화마을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그곳에 1980년대 말부터 공부방을 열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감천마을이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로 세계적 명소가 됐을지 모르지만 관광객들로 인해 가난한 원주민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주민들 간의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부산의 지역언론은 감천마을이 부산을 넘어 세계 속의 멋진 마을로 도약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만 쏟아내고, 다른 지자체는 부러움에 몸이 단다.

인천 동구청장이 탐내는 또 한 사례가 인천 중구 송월동의 ‘동화마을’이다. 자유공원 서쪽 언덕에 있는 송월동은 동구와 이어지는 대표적인 서민지역이다. 2014년 중구청장은 그곳에 수십억을 들여 ‘동화마을’을 조성했다. 구는 송월동의 역사를 피터 팬, 신데렐라로 간단히 지우고, 수십년 동안 서민들이 만들어낸 삶의 골목은 울긋불긋한 상상의 길, 네덜란드길로 만들었다. 동화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기괴한 조형물과 벽화에 넋이 나가 주민들이 사는 곳까지 사진기를 들이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놀이공원이 된 마을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늘어난다. 몇몇 주민들은 그것을 발전이라 말하며 집값이 오르길 기대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들러리로 소외된다. 그런데 그 동화마을을 조성한 이가 동구청이 제2괭이부리마을 사업과 화수부두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전략사업추진실 내 미래발전기획단에 와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괭이부리말, 만석동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이농민의 역사가 스민 곳이다. 그곳마저 국적불명의 동화마을이 될까 두렵다. 마을은 유기체다.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여 마을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야 한다. 그 주민들은 몇몇을 내세우고, 돈을 쏟아붓는다 한들 죽어가는 마을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지만 박제가 된 도시는 치욕스럽다. 동화나라박물관, 도시재생홍보관, 솔마루도예공방, 류현진기념관, 훈장박물관, 배다리역사문화관, 동구의 관광벨트화에 등장하는 기념관들을 보면 그들이 팔아먹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자리는 공무원과 전문가 몇 사람이 팔아먹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제 더는 우리의 삶의 자리가 값싼 상품이 되지 않도록 주민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한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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