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15 19:02
수정 : 2015.04.15 19:02
1년 전 오늘, 나는 제주 강정에 있었다. 이 땅 곳곳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농민, 어부들의 이야기인 <섬과 섬을 잇다>의 강정 편을 쓰기 위해서였다. 제주여행에는 막 사춘기의 터널을 벗어난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셋도 동행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은 해군기지로 인해 400년 된 마을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강정에 동병상련을 느껴왔다. 세 아이와 평화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 아이가 스마트폰을 열더니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던 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했는데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고 전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미사를 드리는 동안 경찰에 의해 다섯번이나 고착을 당한 아이들이 말했다.
“마을 분들과 신부님들이 날마다 이런 일을 당한다니 마음이 아프고 화나요.”
미사를 마친 다음 세 아이는 평화로운 일상이 사라진 강정마을에서 평화체험을 하고, 나는 그동안 강정마을을 오가며 만났던 주민들을 다시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민박집에서 만난 아이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이모, 전원 구조가 아니래요!”
그 뒤 1년 동안 그 큰 배가 왜 침몰했는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왜 단 한명도 구조되지 않았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의 무기력한 국민으로 살았다. 그사이 고3임에도 안산과 서울의 집회에 참여하고 학교에서 세월호 서명을 받던 딸은 교복을 벗고 앳된 여대생이 되었고, 4월16일 함께 제주에 갔던 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250명의 열여덟 청춘은 여전히 4월16일에 머물러 있다.
설 연휴에 영화관에 갔을 때 공익광고 하나가 그 아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 뒤 자원봉사 물결과 2002년 월드컵 때 시청광장을 비추며 그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다친 사람 하나 없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강조하는 광고였다. 세월호 이후 아이들에게 국가는 “무능한 사기꾼”이 되었다. 영화관에서 그런 낯뜨거운 광고를 하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의 소망처럼 “애국 3법”이 발의된다고 해서 애국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안전교육을 강화한다며 초등학생들에게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되풀이해서 보여줘 어린아이들이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나라가 “위대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지난 1년 동안 꿈 많던 세 아이의 꿈은 “사고가 나도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는 나라, 국민을 존중해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과 정부는 ‘국가개조론’을 내놓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개조 대상이 하는 개조는 개그도 되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노숙투쟁을 하고, 진도에서 서울까지 걷기를 멈추지 않으며 어렵게 합의해낸 반쪽짜리 세월호특별법은 시행령으로 더 망가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여당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을 갈라놓았다. 유가족들은 세금도둑, 종북이 되고, 자식을 빌미로 한몫 잡으려는 파렴치한이 되었다. 오죽하면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삭발을 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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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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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과 밀양의 농부들과 주민들은 “내가 당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당해보고 나니 억울하게 삶의 자리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같은 고통, 같은 슬픔을 겪는 이들과 손을 잡았다. 이제 충분히 겪고 보았다. 더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분노와 절망 대신, 진실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 모두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야 한다. 정부와 대통령에게 세월호의 진실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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