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27 18:44
수정 : 2015.04.27 18:44
600년 전 명나라의 정화 제독은 엄청난 선단을 이끌고 대양을 누비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당시 세계경제의 중심은 동아시아였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은 오랫동안 정체했고 동양은 앞선 기술과 문화를 자랑하며 황금시대를 꽃피웠다. 중국은 이제 돈을 무기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제국의 꿈을 다시 꾸고 있다.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창립회원으로 57개국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미국의 푸들에서 중국의 애완견으로 변신했다는 소리마저 들으며 영국이 참여를 선언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영국을 따랐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이유로 이 은행을 지지하지 않았고 다른 국가들에도 압력을 넣었던 미국은 심기가 꽤나 불편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역시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이다. 1990년대부터 중국 등 신흥경제국들의 경제성장이 선진국을 압도했고 금융위기 이후에도 이들의 성장 전망은 상대적으로 밝다. 특히 3조7000억달러를 넘는 외환준비금과 엄청난 규모의 시장에 기초한 중국의 경제력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미미해서, 2010년에는 국제통화기금도 중국의 투표권을 3.8%에서 6.07%로 높이는 등 신흥국의 지분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여전히 이 개혁안을 거부하고 있어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나 브릭스(BRICS)의 신개발은행 등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성공과 국제사회의 기대는 또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으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체제에 대한 비판과도 관련이 크다. 미국이 거부권을 쥐고 있는 이 기구들의 지배구조 개혁은 지지부진하여 여러 국가들의 불만이 높다. 또한 시장근본주의에 기초하여 이들이 개도국들에 제언했던, 재정긴축과 자유화 그리고 경제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빈곤의 해결에 실패했다. 따라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에 관한 여러 논의들이 나타났지만 정작 국제기구들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세계은행은 에티오피아에서 이 기구가 후원하는 개발프로젝트로 수많은 빈곤층이 거주지에서 쫓겨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사회적 보호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 내에서도 시장근본주의 경제학의 퇴조는 뚜렷하다. 국제통화기금은 얼마 전 자본통제를 인정하고 소득불평등을 비판하더니, 지난 3월에는 노동조합의 약화가 불평등의 심화와 관련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또한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긴축을 강조하지만 2010년 아일랜드 지원 과정에서는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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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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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구들의 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의 등장은 이들의 변화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종말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얼마 전에는 국가자본주의에 기초한 중국식 경제발전전략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원조는 인권이나 환경문제 등에 관한 우려가 크며, 베이징 컨센서스도 민주주의의 억압과 소득격차의 심화를 감추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과 함께 국제사회가 새로운 개발의 컨센서스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고도성장과 금융위기, 그리고 구조조정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 과정에서 역할이 작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는 모자라는데 규제완화 주장은 여전히 넘쳐나는 한국 경제의 현실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경제질서 앞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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