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05 18:40
수정 : 2015.05.05 18:40
선거는 후보자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표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공직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보장하는 것은 선거의 핵심이다. 후보자의 공직 적격성을 의심케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쉽게 봉쇄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후보 검증을 빙자하여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과 선거운동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정당한 후보 검증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은 ‘현실적 악의’의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즉 ‘허위의 사실이란 점을 분명히 알았거나,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인식하면서도’ 발언을 한 경우에만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민사재판의 경우 우리 대법원 판결 등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한 재판부는 “(피고인이 의혹을 처음 인지한) 최경영 기자의 트위터가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공보담당자에게 확인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미필적으로나마 허위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실적 악의’의 기준을 적용해보면, 조희연 교육감이 최경영 기자의 트위터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정이 있거나, 트위터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실제로 중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 하는 결론을 내릴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만 책임을 추궁할 수 있을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실적 악의’의 기준을 참조하여 처벌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판결은 “의혹을 받을 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하여 의혹을 받을 사실이 존재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의혹이 제기된 경위 및 ‘사실과의 거리’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서, 선거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후보자 본인과 가족들의 영주권 보유 여부에 대한 의혹이 언론 기자에 의하여 제기된 상황이라면, 그 의혹을 해소할 일차적 책임은 그 사실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승덕 후보자에게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약 2주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접 소명자료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후보 검증을 위해 해명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그 해명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1심 판결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유죄판결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선거에서 후보자 검증이 지니는 의미에 비추어 허위사실 유포죄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할 필요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허위사실 유포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2011년 정봉주 전 의원의 유죄판결 당시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그 결과 이른바 ‘정봉주법’이라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처벌 요건을 강화하고, 허위사실 공표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그 행위가 공공성 또는 사회성이 있는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사회의 여론 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새로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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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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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허위사실 유포죄와 선거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결과가 검찰의 자의적인 공소권 행사로 왜곡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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