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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0 18:43 수정 : 2015.05.10 18:43

강의를 마치고 대개 버스를 탄다. 그 버스가 경복궁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찰버스를 보는 일이 많은데, 어느 날 무심코 경찰버스를 보다가 벽면에 적힌 ‘안전은 지키GO 사고는 줄이GO’라는 유치한 구호 밑에 서울지방경찰청과 함께 손해보험협회라는 이름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찾아보니 작년에 <엠비엔>(MBN) 쪽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안전 캠페인’에 손해보험협회는 처음부터 참여하고 있었다. 안전을 호소하고 사고를 줄이자는 말은 모두에게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보험회사가 사고를 줄이자고 하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작년에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를 합친 전체 보험사의 순수익이 처음으로 은행을 앞질렀다고 한다. 이제 보험 업계는 한국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수익의 대부분은 자산운용을 통한 투자수익이며 실제 보험영업에서는 오히려 적자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손해보험 업계에서 그동안 적자의 주된 원인으로 거론되던 것 중 하나가 자동차보험이다. 보험료 수입 가운데 장기보험에 이어 두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보험은 대중적인 반발이 생길 우려 때문에 함부로 보험료를 올릴 수도 없어서 그동안 업계의 골칫거리였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으로 손해를 상쇄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들이 안전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미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우리보고 사고 치지 말라고 한다.

그들과 달리 보험에 가입하는 입장에서 보면, 보험은 사고가 났을 경우 그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이런 안전장치가 있으면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약간 무모한 도전도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보험이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복지를 비롯한 사회안전망에 관한 논의가 20세기 전반에 중요한 화두가 된 것도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제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보험의 역할이란 사고를 칠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 그런데 현재 보험사는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공권력과 손을 잡고 사고를 치지 말라고 한다. 작년부터 큰 화두가 되었던 ‘안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성은 여기서 생긴다.

보험사 입장에서 안전이란 ‘무사고’를 의미한다. 보험사가 하는 일이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는 ‘사고’ 역시 예측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어야 하기에 우발적인 사태를 의미하는 사고는 근절 대상이다. 그런데 생물의 진화가 사고의 산물인 것처럼 사회의 변화는 사고를 통해 촉진된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서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고 치지 못하게 하려고 철저하게 감시하다 보면 아이들이 주눅 드는 것처럼, 무사고를 뜻하는 ‘안전’은 우리를 위축시키며 다양한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사고를 없애려고 하는 이들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 곧 현재의 연장이 아닌 미래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개인만이 감수하지 않아도 되도록 존재하는 것이 사회가 아닌가?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몇 년 동안 대중교통에서 경찰 홍보물이 자주 눈에 띄는데, 요즘 많이 보는 것이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라는 캠페인이다. 선을 지키면 행복해진다는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 문장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 문제일 뿐. 선을 지키면 누가 행복해질까?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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