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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3 18:26 수정 : 2015.05.13 21:23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서구 강화을 주민은 “강화 영종 연도교 건설과 물 해결, 그리고 땅값을 올려드리겠다”는 안상수 전 인천시장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주었다. 인천시를 빚더미에 올린 전 시장의 과거는 1년 만에 검단신도시를 송도 경제자유구역처럼 만들고, 강화군을 국제관광도시로 만들어줄 거라는 말에 간단히 지워졌다. 사람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야당보다는 힘 있는 집권여당의 탐욕과 자신들의 욕망을 동일시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굳이 ‘세금’이라고 말하며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겨도, 심지어는 304명의 생명이 수장을 당한 원인까지 묻으려 해도 모르는 척한다. 현 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에 어떤 부정이 있었건, 전 새누리당 의원 성완종이 정치인들과 무엇을 주고받았건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리 없다.

정부와 여당은 사람들의 위기의식과 욕망을 적절히 조직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이용할 줄 안다. 집권여당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청와대의 실책을 감추고 미화할 만큼 능력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자신의 지지층이 원하는 떡고물과 처방약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안다. 반면 야당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커녕 국민의 욕구조차 읽어내지 못한다. 그러니 처방전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미래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그저 그런 4년제를 졸업한 공부방 청년들은 처음부터 대기업은 언감생심이었다. 정치인과 언론이 청년들을 향해 꿈과 비전을 위해 투자하라고 하는 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연봉 천오백도 마다 않고 들어갔다. 그러나 자신들이 아무리 열정을 쏟아도 회사는 대기업의 슈퍼 갑질에 수시로 흔들리고, 애써 개발한 아이템과 성과물을 대책없이 대기업에 빼앗긴다. 청년들은 깨닫는다. 어떤 법도 을을 위해 있지 않다는 것을.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서열화된 고교 등급의 꽁무니쯤에 있을 공립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공부방 아이는 1년 만에 입학한 학생의 절반이 퇴학이나 자퇴를 한 그 학교에서 묻는다. “우리도 국민이 될 수 있어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언니가 취업을 하자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한 대학생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평일, 주말 알바를 한다. 다른 대학생들이 쌓는 9개의 스펙은커녕 그 흔한 토익시험조차 볼 여유가 없다. 그래도 나는 이 청년들에게 “미래를 버려라”라고 말할 수 없다.

공부방에 아이를 보내는 아버지들이 다니는 공장에는 노조가 없고, 어머니들은 인근 공장, 식당, 부두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내 아이만큼은 나의 가난을 물려받지 않았으면” 하지만 길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애먼 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이제 좀 그만하라고 부르댄다. 누군가에게라도 탓을 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도 모르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내 아이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자녀들의 미래도, 내 노후도 각자 알아서 하라고 협박하는 정부의 속셈을 숨죽이며 살핀다. 무능한 야당에 더는 기대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부 여당과 청와대를 자기편이라고 믿지 않는다. 저들이 대변하는 것이 대기업과 소수의 권력층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잠시 속아주는 척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김수영의 ‘풀’이 절절히 읽힌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나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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