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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7 18:49 수정 : 2015.05.17 18:49

‘아시안 패러독스’는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협력과 상호의존의 수준에 비해 정치와 안보 차원에서 갈등이 지속되는 동아시아의 상황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이다. 이 개념은 한, 중, 일 사이에 외교적 긴장이 높을 때도 경제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정치와 경제의 비대칭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사실 이 용어는 통합에 대한 잘못된 전제와 아시아 현실에 대한 착시현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굳이 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역설이라고 이름 붙일 근거는 약하다.

우선 유럽통합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경제통합이 먼저 진행되고 정치통합이 시차를 두고 뒤따르는 것은 지역통합의 일반적인 순서라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 관계의 불균형을 꼭 모순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유럽은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출범을 시작으로 경제협력이 시작된 후 1992년 본격적인 정치통합체인 유럽연합이 출범하기까지 40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나아가서 이와 같은 불균형을 전제하더라도 아시아의 현실이 경제와 정치 영역 사이의 모순을 말할 만큼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예컨대 경제통합의 단계를 역내 국가들 사이의 관세 철폐를 의미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 단계, 회원국 사이의 관세 철폐와 역외 국가를 상대로 한 공동관세 부과를 추진하는 관세동맹 단계, 그리고 노동·자본·상품·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단일시장 단계, 마지막으로 공동화폐와 중앙은행 등의 도입을 통해 회원국가 사이에 경제정책을 조정하는 경제연합 단계로 나눈다면 동아시아의 통합 수준은 아직 첫 단계인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정도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실의 이면에는 2011년 기준 동아시아 16개국의 역내 무역 의존도가 44.5%로 유럽연합의 62.6%보다 낮아서 지역 내 경제통합의 유인보다는 지역 외부를 향한 수출 중심 경제구조가 훨씬 강력한 현실이 있다.

그러나 ‘아시안 패러독스’가 갖는 더 심각한 함의는 이 개념이 지역통합을 당연히 이뤄야 할 목표로 전제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가 걸림돌인 것처럼 검증되지 않은 어떤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질서는 2천년에 걸친 중국의 패권 시기와 백년에 걸친 일본의 패권 시기를 거쳐 다시 중국이 과거의 패권적 지위 회복을 시도하는 가운데 있다. 압도적 패권국가 없이 다자관계를 통해 지역통합을 이뤄낸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통합의 미래는 중국 또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한번도 아시아에서 지역통합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 최근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지함으로써 미국에 의한 동아시아의 외부적 균형이 유지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 역내 국가들은 상호간 위계질서 없이 각자 자율성을 갖는 무정부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즉 동아시아에서 지역통합이 진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낮은 역내 무역 의존도 이외에도 지역 국가들이 현재의 자율성과 무정부상태가 자신의 이익에 최선이라 여기고 통합을 위한 어떤 상황변경과 희생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근래 유럽 위기에서 보듯이 지역통합은 평화를 위한 안정적인 틀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회원국가의 자율성을 제한하며 개별 정책 수단을 포기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아시안 패러독스’가 전제하는 선험적 선으로서 시장논리에 따른 통합은 민주적 책임성이나 독립된 주권과 같은 정치적 가치들을 쉽게 희생시킨다. 결국 통합의 목적과 주체, 방법에 대한 충분한 토론 없이 경제적 이해만을 좇는 지역통합 움직임은 동아시아적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의 참여에 의해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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