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전세계 임산부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탈리도마이드 스캔들을 떠올린다. 독일에서 개발되어 입덧을 멎게 하는 ‘명약’으로 유명했으나 나중에 보니 태아에게 기형을 만드는 부작용이 심각했다. 태어난 기형아가 1만명이 넘었으니 명약은 금세 공포의 약으로 바뀌었다. 가짜 백수오의 사정이 간단치 않으니 오래된 다른 나라의 사고가 그냥 과거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에서 팔리는 제품을 전부 조사했더니 가짜 성분이라는 이엽우피소가 나오지 않은 것은 10개뿐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팔고 무엇을 먹었던 말인가. 독성이 있는지 잘 모른다는 대목이 더 기가 막힌다. 병을 고친다고 내세우면서도 정작 안전은 나 몰라라 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가짜를 정확하게 모르는데 진짜인들 제대로 알까, 이젠 진짜 백수오도 의심스럽다. 효능은 그만두고라도 독이 아닌지 따져야 할 형편이다.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니 이런 일이 다시 없을까. 건강기능식품의 시장 규모가 연간 1조5000억원을 넘는데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섰으니 위험도 비례해 커질 것이 뻔하다. 효능과 안전을 감독해야 할 부처까지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위험이다. 성장이니 부가가치니 하는 말만 관심이라면 백수오 한 가지를 봉합한들 앞을 장담하기 어렵다. 기술과 산업화를 앞세워 생명과 건강을 가볍게 여기는 수상한 징후는 여럿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부가 열성을 다하는 원격의료를 빼놓기 어렵다. 직접 만나는 대신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집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편리성에다 첨단기술, 정보통신 강국의 이미지까지, 처음에는 끌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효능과 안전 모두 확실하지 않으니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막상 귀 기울여야 할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한 대로지만, 며칠 전 만성질환자를 상대로 한 시범사업 결과를 ‘만족’이라고 평가했으니 더 밀어붙일 것이다. 이 평가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지는 둘째 문제다. 모두가 걱정하는 안전과 부작용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고 걱정스럽다. 그사이 비판이 집중되었던 것도 그렇지만, 화면만 보는 새로운 기술에 어떤 위험과 부작용이 숨어 있는지 걱정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의사 전달은 잘될까? 서로 보고 듣는 것이 충분하고 정확할까? 손이 필요한 진찰은? 어느 것도 뺄 수 없지만 종합하면 오진의 위험이 가장 겁난다. 건강식품과 원격의료에 ‘성장촉진제’로 작용하는 힘은 같은 데서 나온다. 주식시장이 상징적으로 보이는 대로 경제와 산업화의 논리가 그것이다. 가짜 백수오 때문에 한 회사의 시가총액이 1조원 넘게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원격의료와 관련된 회사가 늘 주식시장의 유망주라는 것. ‘건강’식품과 ‘의료’기술에서 본질은 빠지고 산업만 남았다. 건강과 안전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차라리 ‘신앙’이라 해야 할까. 시장을 키우고 규제를 완화하자는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성장과 이윤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내놓고 경제 살리기와 규제완화를 앞세우니 박근혜 정부 들어 사정은 더 나빠졌다. 가짜 백수오와 졸속 원격의료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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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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