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태일.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전태일 평전>의 첫 구절이다. “변호인들은 먼저 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권양-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부천서 성고문사건 변론요지서의 첫 문장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이렇게 뼈저린 사무침으로 시대의 상징들을 우리 사회에 불러냈었다. 그리고 올해 설립 108년째를 맞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5주기를 맞은 조영래 변호사를 다시 불러냈다. 서울변호사회는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민주화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선배 변호사들의 공로를 재조명하여 ‘올바른 법조인상’을 재정립하고, 변호사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변호사를 선정하여 기념하기로 하고, 그 대상으로 조영래 변호사를 선정하였다. 서울변호사회가 추진하는 조영래 변호사 기념사업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억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된 조영래를 변호사 단체가 기념하고 기록하는 것은 우리 시대 귀감이 되는 변호사상을 정립하는 일이다. 또한 조영래 변호사가 1986년 대한변협 인권보고서 발간의 산파역을 하였다는 점에서, 변호사 단체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호사협회는 이익단체로서의 성격에서 나아가 단체 스스로가 정의와 인권 실현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정립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인권은 ‘법에 의해서’ 보장될 뿐만 아니라, ‘법에도 불구하고’ 보장돼야 하는 핵심 원리다. 변호사법의 규정처럼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사명을 지닌다면, 변호사들의 단체인 변호사협회도 마찬가지다. 과거 중립성 유지라는 명분으로 정의와 인권의 요구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변호사협회는 다시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최근 서울변호사회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기본적 인권의 관점에서 대법관 자격이 없다는 의견을 밝히고, 강기훈 유서대필 재심 판결과 관련해서도 강씨를 기소한 검사들과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에게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의와 인권 실현이라는 새로운 변호사 단체의 역할 정립을 위한 노력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조영래 변호사를 다시 불러내는 그 현재적 의미는 그가 이야기했고 이야기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연탄공장의 진폐증 환자, 스물다섯의 나이에 정년퇴직해야 했던 여성, 망원동 수재 피해자 등 이들의 존재의 존엄성을 주장하며 사회에 이를 승인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
정정훈 변호사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