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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4 18:32 수정 : 2015.06.04 18:32

중동에서 온 괴질로 시민들이 패닉에 빠진 와중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5년 국정원 감청 스캔들 이후 공식적으로 중지된 수사기관의 감청을 다시 합법화하는 것이 골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감청을 포함시킨 게 눈에 띈다. 범죄수사나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목적으로 엄격히 한정한다고 명시했으나 사실상 정권과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개인정보를 감시할 수 있게 한 ‘빅브러더’ 법안이다.

이명박 정권이 ‘삽질’에 집착했다면, 박근혜 정권과 여당은 ‘사찰’에 유별난 애착을 보였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정부는 유언비어나 괴담을 막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사이 2차 감염자, 3차 감염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버스에서 헛기침만 해도 승객들의 히스테릭한 시선이 날아가 꽂히기 일쑤인 상황에서 시민들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함께, 경찰에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떠안아야 했다. 전염병 확산을 조기 차단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수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무능은 이번에도 총체적으로 드러났고 계속 드러나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는 해상 재난이었다. 메르스 사태는 바이오 해저드, 생물학적 재난이다. 사태의 양상은 다르지만 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국가적 중대 사안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물론 정부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의 직접 가해자 내지 일차 원인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정부를 책임에서 면제시켜주진 못한다. 사건 발생 이전 시점에서 본다면 법률과 제도의 미비함 등이 사고의 가능성을 높였을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시점에서는, 이를테면 위기대응의 적절성을 두고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국가나 정권의 역량을 재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갈수록 위험사회가 되어가는 세계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건 국가 규모의 재난에서 작동하는 위기대응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비교적 잘 작동할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나 사회적 구심력이 강해질 것이다. 위기대응이 형편없을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뿐 아니라, 때론 거대한 정치적 격변의 뇌관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우산혁명’을 주도한 홍콩 시민의 불만은 아주 복합적이었지만 사스(SARS)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도 크게 일조했다. 이념 적대가 희미해지고 거대담론이 힘을 잃으면서 음식, 보건, 범죄, 환경 등 과거 ‘일상정치’니 ‘생활정치’라 불렸던 의제들이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추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의제를 통칭해 ‘안전’(safety) 이슈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은 ‘안보’(security)와는 좀 다르다. 안보라는 말에는 전면전 및 냉전시대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 북한과의 적대나 공안범죄에 국한해 협소하게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말로 ‘치안’(police)도 있다. 그것은 공동체 내부의 질서를 다잡고 통제하는 행위로서-어디까지나 지배집단의 눈으로 본 질서이겠지만-, 주로 경찰력으로 표현된다. 안보와 치안은 전통적으로 보수우파가 진보좌파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고 여겨져 왔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안보와 치안을 강조하는 자들은 언제나 “국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안전이란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별건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평소 두루뭉술하게 섞이고 겹쳐 잘 구별되지도 않던 두 개의 가치, 안전과 치안은 긴박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날카롭게 갈라지며 권력의 속성을 폭로한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번 메르스 사태도 역시 그랬다. 안전 없는 치안. 박근혜 시대의 본질은 이 말에 녹아들어가 있다.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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