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분단이라는 바이러스가, 군사력 강화가 안보라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이 바이러스는 더 강해지고 그로 인한 증상도 더 심해지고 있다. 상태는 더 심해지고 있으나 치료는커녕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조차 없다. 이제는 국민의 안위를,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가. 5·24 조치로 남북관계가 중단된 지 5년이 넘었다. 그사이 분단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한국 사회에 퍼지고 있다. 대화도 없고 교류도 없으니 창궐하는 것은 ‘카더라’ 통신이다. 북의 최고지도자가 변덕이 심하고 잔인하다더라. 누가 고사포로 처형을 당했다더라. 고위 권력층이 동요하고 있다더라. 사회에 시장이 퍼지고 국가의 장악력이 무너지고 있다더라. 뉴스와 정보와 첩보, 소문 등이 뒤섞여 퍼지는 ‘우상의 동굴’에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대신 그 음습한 동굴에 퍼지는 것은 ‘역시’와 ‘혹시’다. 역시 젊은 지도자가 들어서도 되지 않는 집안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혹시 통일 대박이 오는 것이 아닐까. 하여 5·24 조치를 창시한 엠비정부의 실패는 반면교사가 되지 못한다. 한국과 미국이 ‘혹시’에 기대며 손 놓고 있는 동안에도 북은 쉬지 않고 발을 놀린다. 핵발전소를 돌리고, 우라늄을 농축하고, 어디선가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을 개발하고… 양말을 만들고, 교복을 제작하고, 돼지를 키우고, 사과를 재배하고, 생선을 양식하고… 석탄 생산은 늘었는데 수출은 줄었다면 그 석탄은 어디서 타고 있을까. 화학비료 수입량은 줄었는데 식량생산량은 늘었다면 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합리적 질문은 설 자리가 없다. 즉자적 대응만이 최우선이다. 북이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 시험을 하니 맞춤형 억제 전략을 채택하고, 킬체인을 구축하여 4D 작전계획을 이행하려 한다. 북이 미사일을 쏘면 그것을 쏴서 떨어뜨리겠다는 미사일 방어 체계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발사대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선제타격은 국제법상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은 무시한다. 군사적 대응은 필연적으로 군사적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는 현실주의의 경고도 무시한다. 북이 고체연료를 이용한 이동식 미사일을 개발하면 북의 도발이라고 낙인찍고 끝이다. 북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을 하면 또다른 군사적 대응을 모색한다.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끝이라고 믿는다. 대응과 맞대응은 끝이 없음을 보지 못한다. 하여 대화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이성적 판단은 마비된 지 오래다. 이미 남북 쌍방이 엄청난 화력을 전방에 집중해 놓은 상황이지만 군사 핫라인마저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잊은 지 오래다. 군사정전위원회를 비롯해 정전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을 멈춘 지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것은, 메르스 사태가 재확인해준 것은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 아닐까. 1932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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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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