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 대 엘리엇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엘리엇은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후 경영진 교체나 자사주 매입, 분사와 구조조정 등의 요구들을 제시하여 최대한의 수익을 실현하는 이른바 행동주의 헤지펀드 중 하나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무기였던 1980년대의 기업사냥꾼들과 달리 이들은 헤지펀드의 형태를 띠고 주주 이익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규모는 2006년 362억달러에서 2014년에는 1200억달러를 넘었고, 그 전략도 수많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이제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특히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뜨거운 논쟁이 진행중이다. 마틴 립턴 등의 법조인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 펀드들이 단기적 이득에만 집중하여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최근 하버드대의 루시언 베브척 교수 등은 그와 같은 주장의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주가를 넘어 이들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광범위한 효과에 대해 논의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사례나 다른 실증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장기투자나 고용, 특히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래도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국가의 채권을 인수하여 고수익을 올려서 ‘벌처펀드’라 불리는 엘리엇이 삼성을 표적으로 삼았다.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한 엘리엇은 이번 합병이 주주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나섰고, 삼성물산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주주총회 결과는 오리무중이며 이제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선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신의 한수’라 불린 합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은 수읽기가 짧았고 삼성의 약한 고리를 노린 엘리엇의 노림수에 걸려든 셈이다. 재벌과 벌처펀드의 시끄러운 싸움을 보며 많은 이들이 삼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누가 보아도 이번 합병은 삼성그룹의 손쉬운 3세 승계를 위한 수단이며, 합병비율로 인한 시비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삼성이기 때문이다. 취약한 소유지배구조 그리고 온갖 편법에 기초한 삼성의 상속과정을 생각하면 삼성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삼성의 꼼수는 비판받아 마땅하겠지만, 어차피 엘리엇의 목적은 주주의 이해를 앞세워 크게 한탕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이런 펀드들이 활개치며 기업을 흔들 때 투자와 고용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싸움 앞에서도 무엇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주주의 이해를 강조하는 주주자본주의가 과연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정의롭고 평등한 길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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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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