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은 신이 내린 가혹한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지금은 그리스인 모두가 거대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재정위기와 긴축 이후 5년간 그리스는 국민소득이 25% 줄어들고 실업률이 26%에 달하여 미국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최악의 경제 붕괴로 고통받고 있다. 노인들은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절반 이상의 청년이 일자리가 없으며, 자살률도 36% 더 높아졌다. 이 현대판 그리스 비극 앞에서 보수언론들은 과도한 복지지출이 그리스의 파산을 낳았다는 신화를 쓰기 바쁘다. 그러나 그리스의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사회복지지출의 비중은 유럽연합 15개국 평균보다 낮으며 소득불평등과 노인빈곤은 최악의 수준이다. 문제는 전반적인 과잉복지가 아니라 공무원 등 일부 특권층이 과도한 혜택을 누렸고, 정부지출에 비해 조세수입이 크게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재벌과 기득권집단들이 정치를 장악했고, 지하경제와 부패 그리고 탈세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은행대출 데이터를 이용한 최근의 한 실증연구는 그리스 법조인들이 매달 주택대출을 갚는 금액보다도 소득을 더 적게 신고했다고 보고할 정도다. 이와 함께 2004년 이후 법인세 등의 감세로 세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2008년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재정적자가 악화되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임 재무장관 차칼로토스는 <저항의 도가니>라는 저서에서 이런 점들을 지적하며 그리스 위기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스에 비극을 가져다준 잘못된 운명은 2001년 유로존 가입이었다. 덕분에 그리스는 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4%나 성장하는 호황을 누렸지만 저금리의 빚에 기초한 성장은 취약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재정통합 없이 통화통합만으로 이루어진 유로존은 심각한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로의 사용과 함께 독일은 인플레와 임금을 억누르며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반면, 경쟁력이 약한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고 적자가 누적되었다. 실제로 2007년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는 무려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했는데 그중 63%가 유럽지역에서 나왔고, 상품수지 흑자 중 약 28%가 남유럽 4개국과 아일랜드 덕분이었다. 그 흑자는 다시 남유럽에 투자되어 대외부채와 버블을 심화시켰다. 결국 유로존 내의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어 왔지만, 그 부담과 리스크는 평가절하가 불가능한 적자국들에 돌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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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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