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코 파랗게 하고 눈 빨갛게 해도 그렇게 크게 얘기가 없었는데, 진짜 여러분들, 컸다! 어른이 됐네. 응, 진짜!” 색종이 접던 아저씨는 목이 멨고, 보던 사람들은 울컥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각별한 감정에 휩싸인 이들이 있었다. 김영만 아저씨의 종이접기를 가장 열심히 보며 자랐던 어린이들, 이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젊은이들이다. 이들 세대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걱정과 위로의 대상이 되어왔다. 억압받고 착취당하면서 저항할 줄도 모른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그들에게 아저씨는 ‘어른이 됐다’고 말해주었다. “어른인데 왜 아직 그 모양 그 꼴이냐”가 아니라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기쁘다”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그 말이, 위축되고 얼어붙은 마음들에 어떤 미사여구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훈훈했던 분위기는 며칠 가지 못했다. 김영만 아저씨가 억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게 알려지자 인터넷에 지어진 ‘추억의 박물관’은 순식간에 살벌한 콜로세움으로 돌변했다.) 젊은이들이 추억에 잠겨 눈물 흘리는 걸 보면서 유난 떤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일종의 퇴행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사실 종이접기 아저씨 신드롬은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볼 때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어떤 사회적 경향의 한 사례로 보아야 한다. 오래전 히트한 대중문화 상품이 주류 미디어에 다시 조명돼 붐이 일어나는 현상이 최근 들어 심심찮게 벌어졌다. 이를테면 ‘쾌락의 재활용’이다. ‘쎄시봉’ ‘토토가’ 같은 유행이 대표적인데 이번 종이접기 아저씨 신드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현상을 지배하는 정서는 물론 노스탤지어다. ‘옛날이 참 좋았지’라는 그리움과 애틋함. ‘쎄시봉’이든 ‘토토가’든 ‘종이접기 아저씨’든 과거 지향이라는 본질은 같다. ‘종이접기 아저씨’가 퇴행이면 ‘쎄시봉’도 ‘토토가’도 모두 퇴행이다. 리마인드 신드롬은 비단 한국 사회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일본의 ‘쇼와붐’, 즉 쇼와시대(1926~1989)에 대한 집단적 향수는 그 규모와 지속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쇼와붐이라고 할 때의 ‘쇼와시대’는 대체로 패전 이후인 1950년대부터 버블 붕괴 직전까지 시기를 가리킨다. 특히 2005년 영화 <올웨이스-3번가의 석양>으로 재점화된 붐은 10년 가까이 열기가 식지 않았다. 쇼와붐이 그토록 거대할 수밖에 없는 배경 중 첫째는 그때 젊은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의 수 자체가 엄청나게 많아서다.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느낀 행복이 가장 크고 충실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으로 하루가 다르게 생활이 윤택해지고 급기야 기업들이 세계를 돌며 부동산을 ‘쇼핑’하러 다닐 정도로 흥청거리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물질적 풍요가 전부는 아니었다. 사회의 총체적 분위기라는 면에서 보자면, 쇼와시대의 일본과 오늘날의 일본을 구별해주는 결정적 차이는 미래에 대한 집단적 기대감이다. 쇼와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낙관적이었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쇼와시대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오늘에 와서는 그런 희망과 활기를 찾기가 어려워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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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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