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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03 18:27 수정 : 2015.08.03 18:27

청학동 훈장님들이 바빠지게 생겼다. 벌이가 시원찮던 안보교육 강사들의 일감이 늘어날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교육 콘텐츠를 조금 손봐서 이를테면 “김정은의 폭력성이 북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따위 주제를 걸고 학교나 교사 연수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허가로 난립하던 해병대 캠프도 이제는 인성교육기관 인증을 받음으로써 ‘합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쾌유를 비는 공연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퀴어 페스티벌 반대 공연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북춤 선수들도 ‘공동체성 함양을 위한 건강 북춤’ 강좌 같은 것을 학교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새천년이 열린 지도 15년이 지난 시점에 교육현장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는 기막힌 법이 태어났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하여 본회의 참석 의원 199명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7월21일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 이제 2학기부터 전국 방방곡곡 학교에서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모양이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길러내기 위해”(제1조) 이 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표현을 눈여겨봐야 한다. ‘인성성취기준’을 정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고 한다. 효도1급 예절2급 따위 어이없는 인증이 난립하게 될 것이다. 효도1급을 따기 위해 어버이를 업고 아파트 단지라도 한 바퀴 돌아야 할 모양이다. 인증의 권능을 독점한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라는 단체는 인성 사교육 시장의 기린아가 될 것이다. ‘인성 사교육 시장’이라니.

이 법이 제정된 데에는 아마도 ‘종북 좌파’들에게 인권교육과 시민교육의 영토를 빼앗긴데다 ‘갈수록 이 나라 아이들이 나약하고 싸가지가 없어져서 큰일’이라는 보수 어르신들의 나라 걱정이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미 20대 ‘영애’ 시절에 <새마음의 길>이라는 책을 펴내고, 아버지 또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충과 효를 강의하던 가히 ‘인성 천재’라 할 우리 대통령의 존재가 가장 큰 힘이 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 뜻을 좇아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이 지난 몇 년간 열심히 움직인 모양이다. 이 단체의 상임고문인 손병두씨는 전경련 부회장과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발언한 보수우익의 거두다. 출생지를 의심케 하는 놀라운 본토 발음 “아륀지”로 우리에게 잊히지 않을 추억을 선사한 이경숙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있고, ‘5·16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신문광고로 2012년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예비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최성규 목사도 상임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효’라고 하니, 아흔네살 아버지와 두 아들이 벌이는 롯데 일가의 막장드라마가 퍼뜩 떠오른다. ‘예’라고 하니 강간인지 화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성관계를 끝내고 여성에게 30만원을 주었다는 새누리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효’와 ‘예’를 배양하기 위해 인성교육 특강을 들어야 한다고 권고하면, 그들은 아마도 ‘효’와 ‘예’는 내면의 가치이기 때문에 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서 이준석 선장 같은 이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이준석을 앞장세워 자신들은 뒤로 숨고, 세월호로 죽임당한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인성교육법’이라는 회초리를 드는 이 어이없는 폭력이란.

이계삼 칼럼니스트
‘바르게 살자’는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하나로 족하다. ‘착하게 살자’는 조폭들의 팔뚝에 새겨진 시퍼런 글씨로 충분히 으스스하다. 부질없는 일들 벌이지 말고, 부디, 이 험한 세상에서 당신들의 인성이나 잘 건사하기를 빈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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