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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05 18:32 수정 : 2015.08.05 18:32

6일 개최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6자회담 당사국 외교수장들이 모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집결했다.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후 6자회담국 외교수장들이 처음 모이는 이 자리에서 ‘북핵문제’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으니 답을 찾기 위해서 과거로 질문을 던진다.

대화와 제재는 양립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란과 북이 다른 점이 이것이다. 이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북핵문제’에 접근하면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이란에 접근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북에 접근하면 문제는 더욱 꼬일 것이다.

이란의 경우 제재는 대화를 돕는 보조재였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을 경제제재로 압박해서 협상장으로 끌어내 타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원유가 수출·수입의 80%, 정부 재정의 50~60%를 차지한다. 2006년부터 부과된 유엔의 제재 때문에 이란은 해마다 500억달러 정도의 손실을 입었고, 그 결과 2014년께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났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었다. 그래도 버티고 있던 이란 경제는 최근 급락한 원유가격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원유가격은 2014년 한 해 동안 반토막이 난 뒤 올해 초 잠깐 반등세를 보였다가 다시 추락하기 시작해 7월에는 지난 15년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올해 재정수입은 237억달러로, 2011년과 2012년 수준의 5분의 1이 될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추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란에 협상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협상 타결은 이란에 500억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파산 직전의 정부를 구해줄 수 있는 생명선이었다. 대화와 제재 ‘병진노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제재는 대화의 가치를 극대화했고, 대화를 거부할 경우 치러야 하는 비용을 극대화했다.

북과 관련해서는 제재와 대화 사이에 이러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 이미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북은 자립적 경제를 지향하면서 외부와의 무역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수준에서만 유지하고 있다. 유엔이 경제제재를 추가한 이후에는 오히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진전되고, 경제도 성장하고 있다. 경제제재가 이란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제재가 해제되더라도 북이 당장 받을 혜택도 없는 셈이다.

그러자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제재의 효과를 늘리기 위해 양동작전을 추가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을 압박하여 경제제재에 동참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권문제 등을 부각해 북에 대한 추가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나름 성과도 있었다. 중국은 북의 핵·경제 병진노선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한·미의 입장에 동의해줬고, 북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유엔 총회에서는 북의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재를 강화해 북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겠다는 계획은 치명적 맹점을 안고 있다. 제재가 대화 거부의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한국이 제재를 강화하는 만큼 북은 이들을 적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경제를 봉쇄하고,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동맹국을 압박하는 것은 북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적대국’과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거부할 것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북과의 관계에서 대화와 제재는 상호 배제적이다. 제재를 강화하면 할수록 ‘적대국’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대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멀어진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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