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19 18:42
수정 : 2015.08.19 20:14
순창을 다녀왔다. 메르스 때문에 한 마을 전체가 격리되는 바람에 전국에 이름을 알린 곳. 공포가 온 나라를 휩쓸긴 했지만 마을을 통째로 막을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지금은 어떨까, 궁금증 때문에 몇몇 주민을 만났다.
분노! 그들의 말은 내내 거칠고 높았으며, 이유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국가의 보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 말하자면 갑자기 ‘비국민’이 된 것. 국가의 보상이 아니라 사과를 원한다는 말에서 ‘배제’란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직도 이들은 경계 바깥에 있다. 정부가 후속 대책을 거론하지만 격리된 자들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는 것이 그렇다.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부수적 피해’ 정도로 여길 테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열심히 하는 일은 토론회나 공청회, 그나마 정부 조직을 바꾸느니 마느니 하는 그들만의 관심에 집중한다. 백서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의 불안과 고통, 그리고 그 책임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다.
잊히는 것, 그 결과로 배제되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6월초의 혼란과 불안을 떠올려보자. 초기대응이 실패했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서울시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추적하고 격리한 것은 잘한 일인가 아닌가? 국가와 리더의 책임을 묻던 기억이 벌써 희미하다.
집단의 기억은 사실뿐 아니라, 더불어 비판적 평가와 성찰을 기록한다. 그것도 무명과 익명, 힘없는 사람까지 포함한 것. 기억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어떤 후속 조처도 허상이며, 잘되어도 그들만의 대안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다르지만 또 비슷한 세월호 사건을 호출하자. 사회를 개조할 것처럼 요란했지만, 정부 기능 통폐합, 안전교육, 안전문화 같은 ‘투망식’ 대책이 전부였다. 원인을 찾는 조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으니, 우리의 기억은 사고 자체, 즉 문제의 원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안다운 대안이 나올 리 만무하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기억하기가 정부조직 개편보다 더 중요하다. 어떤 일이 왜 벌어졌고, 문제는 무엇이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온전하게 평가하고 기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예가 마뜩잖지만 2005년 카트리나 사태와 수습 과정을 보자. 의회가 나서서 반년을 넘는 동안 아홉 차례의 공청회를 열고 오십만 쪽 이상의 서류를 검토했다. 진단과 평가, 대안은 육백 쪽의 보고서에 담겼다.
국회에 기대를 걸기 힘든 우리 사정이 안타깝다. 기능과 역량도 다르지만, 책임을 둘러싼 투쟁이 되면 어떤 평가 공간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형식이 무엇이든 딱 부러진 성과를 낸 적이 없지 않은가. 정부와 국회 어디에도 맡길 수 없으니, 시민이 직접 평가하는 방법이 유일하게 남는 기억의 방법이다. 일단 ‘시민평가’라고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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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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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가에는 민주주의를 빼고도 두 가지 가치가 더 있다. 국가, 관료, 정치의 책임을 묻고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시민사회라는 점이 먼저다. 바깥에 서야 정부가 한 일과 그 구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 시민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전문가와 관료의 관점으로는 순창 주민들의 고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민이 스스로 고통과 문제를 말해야 시민이 중심이 되는 대안이 만들어진다. 이쪽이 더 현실적인 대안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끈질겨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덧붙인다. 시간과의 싸움, 망각과의 투쟁에서 이겨야 한다. 제2의 메르스 사태가 생기면 그 고통 또한 시민이 모두 받아안아야 하기에, 피할 수 없는 의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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