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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2 18:48 수정 : 2015.09.02 18:48

오늘 중국 수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군사퍼레이드)이 열린다.

왜 중국의 승전기념일은 9월3일인가?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을 통틀어 8월15일을 기념하지 않는가. 일본은 1945년 8월15일에 항복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1945년 8월15일 정오 히로히토 일왕은 ‘대동아전쟁 종결에 관한 조서’를 발표했다. “미·영·중·소 4국에 대해 그 공동성명을 수락한다”는 간접화법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한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한 것이다. 남북은 이날을 기념한다.

하지만 이날은 일본이 일방적으로 선언을 한 것이었지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의 공식적 문건이 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공식 항복문서는 9월3일 도쿄만에 입항한 미 군함 미주리함 선상에서 체결되었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이 이날을 항일승리일로 축하하는 이유다. 당시 미주리함 조인식장에 걸려 있던 미국기는 거의 100여년 전 페리 제독이 함포외교로 일본의 개항을 강요할 때 미국의 기함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미국의 승전에 확실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으로 결정된다는, 국가관계는 힘으로 규정된다는 현실주의적 선언이었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국제관은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키기 위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에서도 관철됐다.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이후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평화회담장에 초청하는 것도 반대했다. 결국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4월28일에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이것은 역사학자 존 다워의 표현대로 “분리된 평화”였다. 당시 격화되던 냉전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키는 조약에 중국을 배제하고 한국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씨앗은 이때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힘으로 아시아 절반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국제관이었다.

이제 미국은 항일전승일을 기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이 이를 거창하게 기념한다. 모두 힘만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오늘의 동맹국인 일본의 과거를 들추는 것이 불편하다. 부상하는 중국은 전승절에 국력을 과시하여 ‘치욕의 세기’에 한풀이를 하려 한다.

하여 세계대전과 관련된 또다른 기념일을 생각한다. 5월9일이다.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이다. 독일이 베를린에서 공식적 항복승인서에 조인한 것이 1945년 5월8일이었지만 조인식 시간이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9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9일은 ‘유럽의 날’로 기념되고 있기도 하다. 양대 세계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말자고, “전쟁을 생각할 수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초국가적 공동체를 유럽에 건설하자는 선언이 발표된 날이다. 이날은 ‘슈만의 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선언을 발표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의 이름을 땄다.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를 꿈꾸었던 그와 같은 사람들의 비전은 오늘날 유럽연합으로 현실이 되었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20세기 전쟁과 식민주의가 제대로 종식되지 못했다. 힘을 앞세운 냉전이 평화체제의 건설을 막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의 꿈’을 꾸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이제라도 전쟁뿐만 아니라 식민주의를 청산하여 ‘야만의 20세기’와 확실하게 이별하자. 그리하여 화해와 평화의 21세기를 여는 ‘한반도/동아시아의 날’을 기념하자. 분단에 기대어 자신의 손에 움켜쥔 한줌 권력, 한줌 재화를 지키려는 껍데기는 가라.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기를 열 비전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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