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07 18:42
수정 : 2015.09.07 18:42
요즘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환경’ 농산물을 원한다. 그런데 ‘친환경’이라는 말만큼 널리 쓰이면서도 그 의미가 잘못 인식되어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친환경 농산물이란 작물의 파종에서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환경 친화적인 방식, 즉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친환경 농산물은 재배 과정에 제초제는 물론 화학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음으로써 사람들 건강에 해롭지 않은 농산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소비자는 물론 생산 농민들도 다르지 않다. 많은 농민들은 작물 재배 과정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생산물의 판매 수입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친환경 농산물은 최종 소비 단계에서만 안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먹거리 문제에서 ‘친환경’의 실제 의미는 ‘친인체’인 셈이다.
농산물을 파종해서 최종 소비에 이르기까지는 재배, 수확, 포장, 저장, 운송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부분의 농가에서 작물을 재배할 때 직접 마련한 퇴비를 쓰는 대신 공장에서 만든 퇴비나 고급 영양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 또 제초제를 피하기 위해 두둑에 비닐을 씌우는데, 그것은 생산과 운송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소모하고 폐비닐을 처리하는 데에도 오염물질이 생긴다. 출하 시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저온창고에 저장해야 한다.
오늘날 세대원 수가 줄고 외식이 늘어남에 따라 농산물의 포장도 갈수록 크기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포장재가 쓰이고 있다. 식료품 매장에서는 무나 배추, 과일 등을 반으로 쪼개 일일이 랩으로 싸 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쓰레기 배출을 늘려 생태계에 부담을 줄 것이다.
식료품의 운송 거리는 생태계에 대한 영향은 물론 식품의 신선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운송 거리가 늘어나면 당연한 결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늘어나 생태계에 부담을 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방사선 조사와 같은 수확 후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농산물의 이동 거리를 의미하는 푸드마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농산물의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5%를 밑도는 현실의 이면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에는 생산자 못지않게 소비자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농사의 결과물보다는 생산 과정에 대한 생태적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관심에 가장 걸맞은 소비는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지역 농산물(로컬푸드)을 소비하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로컬푸드는 농부와 도시민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거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함을 보증한 채 멀리서 날아온 농산물보다는 약간의 흠이 있더라도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가까이서 생산된 농산물이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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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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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비자로서 친환경 농산물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소비생활에서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살아가야 마땅하다. 방학에 집에 내려온 큰아이가 자기는 다음에 베엠베(BMW)를 타겠다고 했다. 무슨 수로 그 비싼 차를 타느냐고 했더니 버스와 메트로(지하철), 걷기를 합친 약어라고 한다. 3포 세대의 자조 섞인 말인지라 웃을 수도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그러한 삶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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