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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4 18:36 수정 : 2015.10.14 18:36

앵거스 디턴이라는 학자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일부 국내 언론은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소개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나친 불평등을 비판하는 학자다. 그의 중요한 관심사인 건강 불평등에서는 반대하는 입장이 더 명확하다.

가장 최근에 쓴 책 <위대한 탈출>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 근거가 될까. “승자가 사다리를 없애서 뒤따르는 사람들을 막으려 한다면 불평등은 나쁜 일이다. 새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영향을 미쳐 자기들에게는 이제 필요하지 않은 공교육이나 공공보건의료를 줄일 수도 있다.” 해마다 벌어지는 노벨상 소동이 나도 마땅치 않지만, 이번에는 의도를 헤아려주길 부탁한다. 건강 불평등을 제대로 알자는 주장에 힘을 보태려는 것이다.

불평등을 다루자고 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얼마 전 몇몇 동료 연구자와 함께 <한국의 건강 불평등>이라는 책을 냈기 때문이다. 겉으로도 전문서적처럼 보이는데다 내용이 어렵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널리 읽힐 책은 아닌 셈이다. 어차피 실리(?)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조금은 공적 가치가 있었으면 한다.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건강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건강 불평등을 어떻게 제자리에 놓을 수 있을까. 그만한 과제라야 이런 목표나 물음이 정당한 것이 된다면 근거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1) 모든 이에게 건강은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자 권리다. (2) 건강 불평등은 정의가 아니다. (3) 어느 때보다 건강의 ‘평균’이 높지만, 불평등이 심각하고 차이는 더 벌어진다. (4) 좋은 정책과 정치로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기억하면, 2006년 1월 <한겨레>가 국내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건강 불평등을 크게 다루었다. 나야 취재 대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는 꽤 낙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평등한 현실이 분명하고 건강 형평의 사회정의와 권리도 의심할 것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우선순위가 높은 정책이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관심이든 정책이든 제자리걸음이다. 인권, 선거 공약, 정부의 정책, 언론 보도, 시민운동의 실천과제, 그 어느 곳에서도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한두 가지 이유로 줄일 수는 없겠지만, 낯선 개념인데다 불평등 논의를 꺼리는 분위기, 그리고 건강을 개인 문제이자 과제로만 보는 시각이 큰 지장을 준 것으로 짐작한다. 많은 사람의 눈과 머리 바깥에 있는 사정이 그다음 단계인 노력과 실천, 해결로 가는 길에 큰 걸림돌로 버티고 있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나에게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면 관심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언뜻 봐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5~9살 남자 어린이가 생명을 잃는 가장 중요한 이유, 사고를 예로 삼는다. 우리 아이들 사이에서 아버지 학력에 따른 사고 ‘사망 불평등’을 없애면 아이들 전체 사망 불평등의 69.7%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사고와 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건강 불평등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복구하는 것이 첫 단계 과제라고 주장하려 한다. 특히 언론과 시민들이 더 많이 나서기를 부탁하고 싶다. 전문가의 범위를 넘어 문제 인식 단계부터 ‘민주화’되어야 할 터, 더 많은 보도와 심층적인 현실 분석, 그리고 논란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조직해야 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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