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18 18:41
수정 : 2015.10.18 18:41
얼마 전 탈북자 정착제도에 관한 학술회의에서 젊은 청년이 물었다. “왜 저 사람들만 정착금과 임대주택을 줍니까? 우리는 취직도 안 되고 방 얻을 돈도 없는데, 똑같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서 왜 역차별합니까?” 청년세대의 암울한 현실에서 ‘소수자 포용’과 ‘작은 통일의 의미’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땅의 현실에 절망한다. 통일부의 실태조사 결과, 탈북자의 73%가 스스로 하류층이라고 대답했다. 북한에서 살 때가 더 나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충격적인 현실이다. 취업의 문은 여전히 좁아 탈북자의 실업률은 국민 평균보다 높고, 직장이 있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정부가 탈북자를 고용한 기업에 고용지원금을 주지만, 기업들은 대부분 지원기간 3년이 끝나면 해고한다. 정부 보조금만 챙기는 각박한 현실이다. 노는 탈북자들은 쉽게 보수 정치판에 휩쓸린다.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이 땅을 뜬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탈북자도 벌써 16명이다. 그들은 북한 방송에 나와 남한을 지옥이라고 비난한다.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을 떠나는 탈북자도 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탈북자 정착제도를 손봐야 할까? 전문성이 없는 통일부가 탈북자 정착 업무를 주관하거나 혹은 업무 중복이 많아서 예산 낭비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착제도의 기술적인 문제들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지역과 시민사회의 역할도 늘어나고 자활 대책으로 옮아가고 있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단순히 정착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 동독인들을 수용했던 서독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주거지원이나 정착보조금은 비슷하다. 결정적 차이는 사회안전망이 서독에는 있고 남한에는 없다는 점이다. 서독은 동독인들을 자신들의 사회보장체제로 편입했다. 동독 시절의 연금을 승계해서 서독의 연금제도로 연결해주고, 동독에서 발생했던 산업재해를 서독 보험체계에서 인정해주었다. 서독의 복지망이 존재했기에 동독 이주민들은 의료와 교육, 실업보호와 공공부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남한의 탈북자는 일정기간 정착지원 기간이 종료되면 사회안전망이 없는 ‘정글’에 내던져진다. 장관 측근이라고 뽑아주는 불공정한 취업시장에서 사회적 연줄이 없는 이방인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각자도생의 시절에 관용은 사라졌고 이웃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 정착제도를 개선해보았자 사회안전망이 없다면 결국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예산을 늘린다고 해결할 수 없다.
통합을 원한다면 우선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복지는 형편이 좋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유럽에서 보편적 복지를 시작했을 때는 형편이 나빴을 때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 위에서 연대를 모색했고 절망의 현실에서 희망의 출구를 찾았고, 공정한 분배와 공동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확대했다. 유럽에서 전쟁과 복지는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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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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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통일도 동반자다. 1945년 분단 이후 1990년 통일이 될 때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은 500만명이 넘는다. 서독의 복지제도는 동독인들을 품었고, 통합 역량을 갖춘 서독이 통일을 주도했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는 2만8천명이 조금 넘지만, 여전히 우리 안의 통일은 멀다. 아비의 임금을 줄여 아들의 고용을 늘리자는 시대에 어디 탈북자의 삶만 고단한가? 복지가 줄어들면 공동체는 분열하고 통합은 멀어진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이 분열할 때, 통일이라는 구호가 허공에 흩어진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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