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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2 18:42 수정 : 2015.11.02 18:42

공개된 지면에 두 분을 불러들이게 되어 송구합니다. 짐작하시듯, 두 분이 출연하신 ‘노동시장 개혁’ 공익광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올봄이었나요. <국제시장>의 ‘덕수’와 <미생>의 ‘장그래’가 정부의 노동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그 광고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좀 잠잠해질 만도 한데,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니 두 분은 불편하실 것도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주, 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세상 공부’ 길잡이 삼아 썼던 제 책을 읽은 학생들의 초대였습니다. 드물게 진지하고 열띤 자리였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친구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 말이 역겹다”고 일갈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뿐이다. 그러나 나는 매일 책상 앞에서 무기력한 나 자신을 확인한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저도 무어라 떠들긴 했습니다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내내 울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연말 정기국회에서 저들이 그 광고에 나오는 그대로 노동법을 확 고치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춘’이라는 단어가 싫고, 매일 무기력한 자신을 확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목마른 사막 같은 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그야말로 ‘확인사살’하는, 이른바 ‘헬조선의 완성’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곳곳에 붙여 놓은 빨간 현수막에 써 놓았듯이 “노동시장 개혁해서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 만들어 주겠다”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습니까. 이른바 ‘프레임 전쟁’에서 저들은 완승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분이 출연한 광고, <국제시장>의 ‘덕수’가 <미생>의 ‘장그래’ 어깨에 손을 얹고서는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청년을 위해 노동시장을 개혁하자”는 그 광고가 굉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많은 국민들은 임금피크제를 ‘덕수’의 임금을 깎아 ‘장그래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요. ‘덕수’는 법정 정년이 되기도 전에 명예퇴직하거나 정리해고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결국 ‘덕수들’의 임금만 깎일 것입니다. 저들이 내놓은 안대로라면, 비정규직 기간이 대폭 늘어나고 파견 업종이 확대됩니다. 해고 요건이 완화되어 ‘저성과자’ 낙인은 곧 퇴출 신호가 될 것입니다. 그나마 누리던 ‘을’의 법적 권익을 빼앗아 ‘갑’의 칼자루로 쥐여주는 것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입니다.

그러므로 두 분이 출연한 광고는 ‘공익’광고가 아니었습니다. ‘갑’들의 프로파간다였습니다. 그 상징조작에 ‘장그래’와 ‘덕수’가 동원되었습니다. 올 연말 정기국회에서 다시 이 문제가 불거질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보다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막대한 사안입니다. 그때 ‘갑’들의 기선제압에 동원된 두 분이 다시 호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입니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임시완·황정민님께 부탁드립니다. 잠시라도 이 문제를 살펴봐 주십시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노동시장 개혁안에 대한 ‘을’들의 국민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덕수’와 ‘장그래’야말로 이 나라 ‘을’들의 상징이 되어 마땅하지요. ‘덕수’와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투표에 참여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정말, 큰일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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