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08 18:43
수정 : 2015.11.08 20:46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 역시 반드시 예정된 길은 아니었을 수 있다. 민주화의 원인을 사회경제적 발전과 계급구조의 변화 등 일정한 조건의 충족에서 찾는 구조결정론은 민주주의 실현의 필연성과 그 불가역성을 강조하지만 종종 민주주의가 정착된 결과 나타나는 현상을 민주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민주화를 각 주체들의 전략적 상호작용 가운데 나타나는 게임의 우연적 결과로 이해하는 입장은 전쟁에서의 패배나 독재자의 사망 등 사회경제적 구조와 직접 관련 없는 요소들에 의해 민주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시민사회의 민주화 투쟁이나 집권 가능한 대안세력의 존재 없이도 전쟁에서의 패배 때문에 갑자기 민주주의 이행이 시작된 경우가 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 이행은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이 키프로스의 친그리스계 쿠데타를 지원하다가 이에 대응한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을 막지 못하고 패배하면서 시작되었다. 아르헨티나 역시 1982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영국에 대항해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자 민주주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정치에서 행위자의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온 우연적 결과들을 보여주는 이러한 사례들은 동시에 역사에서 개인이 져야 하는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만약 역사에 우연이 없다면, 따라서 역사는 예정된 역할을 나눠 맡는 필연의 전개일 뿐이라면 모든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수 없고 우리는 정치에서 아무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개입하는 인간의 자유와 그 결과는 각각 역사의 이성과 역사적 책임에 대해 개인에게 묻는 것을 가능케 한다. 만약 역사에 이성이 없다면 정치에는 단지 미친 사람들만이 있을 것이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 모호성과 의미, 정념과 이성이 서로 긴장하고 길항하고 분열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서로 다른 선택이 부딪치면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구조는 행위자의 선택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지만 개인에게 묻는 역사적 책임에 대해 온전한 변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화를 가능하게 만든 주요 행위자의 선두에는 학생운동이 있었고 이어서 노동운동, 그리고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지지와 동참이 있었다. 1970년대 학생들은 박정희 정권의 폭압을 뚫고 유신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예컨대 1975년 4월8일의 대통령 긴급조치 7호는 반정부 시위와 농성을 계속하던 고려대학교만을 대상으로 휴교조치를 내리면서 이를 어길 때는 누구나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고 국방부 장관은 군대를 동원하여 학교를 봉쇄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이 조치에 따라 장갑차가 진주한 채로 한달여 계속된 휴교기간에 41명의 고려대 학생이 제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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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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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의 헌신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가져온 가장 빛나는 결과는 어떤 외부의 강제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독립된 선택권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개인들의 등장이다. 근대가 설정한 인간해방의 목표는 모든 집단 정체성의 규정보다 우선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강한 소속감을 갖는 집단의 삶의 방식을 표현함으로써 마치 자아를 찾은 것 같은 허위적인 열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의 민주헌정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한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는 기회의 완성은 아니다. 역사해석의 독점을 통해 특정 정체성을 주조해내려는 전체주의적 시도가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완성이라는 근대의 성취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시대착오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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