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1.09 18:53 수정 : 2015.11.09 18:53

동네 이장을 맡고 있는 아내가 며칠 전 마을에 고소득 농가의 실태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고소득 농가의 기준은 연소득 5천만원 이상으로 되어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2만8000달러였다고 하니 3인 가족 농가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연소득 5천만원은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득에도 한참 모자란다. 농민의 소득이 매우 낮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우리 집은 논밭이 절반씩 차지하는 땅 5천평에 닭이 900마리, 새끼 딸린 소가 한 마리 있고, 연소득이 5천만원에 한참 못 미치니 소농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농사 규모가 어중간하다 보니 트랙터나 벼 건조기 같은 대형 농기계는 쓸 처지가 못 되어 올해도 벼를 도로에 내다 말려야 했다. 벼를 자연건조하려면 볕이 좋은 곳에 모기장처럼 된 기다란 멍석을 깔고 벼를 고루 깔아야 한다. 메벼는 보통 이틀이면 되고 찰벼는 좋은 볕에 최소한 사흘은 말려야 속에서 하얀 찹쌀로 변한다. 말리는 동안에는 고무래로 하루에 두어번씩 저어줘야 고루 마른다. 다 마르기 전에 비라도 오면 큰 낭패다. 벼를 포대에 담아 집안에 들였다가 다시 내다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찰벼를 말리는 도중에 비가 오는 바람에 부랴부랴 거둬들인 터라 나중에 하루쯤 더 내다 말려야 할 것 같다.

벼를 볕에 말리는 일은 꽤 힘든 작업이다. 나의 경우 30㎏이 훨씬 넘는 벼 포대 150개를 차에 옮겨 싣고 내리는 일을 여러 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정부나 농협이 수매하는 벼는 논에서 수확한 후 800㎏짜리 큰 자루에 곧바로 담아 사들이는데다 집에서 방아를 찧을 벼도 대부분 건조기로 말리기 때문에 동네 앞 목 좋은 자리를 내가 차지할 수 있었다. 농사 규모가 커지고 농민들이 고령화되면서 벼를 볕에 말리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동네 할머니 한 분은 논 1500평에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벼를 수확하고 건조하는 비용으로 수확량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내놔야 했다. 그분은 내년에 벼농사를 포기할 작정이다. 올해 벼농사가 풍작이어서 전에 건조기 한번으로 끝나던 것이 두번으로 늘어난데다 쌀값은 작년에 비해 훨씬 떨어져서 그분 가슴에 안팎으로 울화통이 치미는 모양이다.

모든 생활물자들이 상품화돼가는 현실에서 소농으로서 가계의 수지 균형을 어느 정도라도 맞추자면 산출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투입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품목을 소량으로 생산해서 일감을 분산시켜야 한다. 이는 건전한 농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나 기계를 사는 데 따르는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자니 몸이 항상 바쁠 수밖에 없다. 콩이나 팥, 들깨 등도 너무 익어서 튀기 전에 거두어 털어서 실한 것만 골라 말려야 하고, 고구마도 서리 오기 전에 캐서 따뜻한 곳에 두어야 한다. 올해 가문 날씨 탓에 꽤 많이 열린 뒷마당의 감도 따 두면 금방 홍시가 되기 때문에 밤에 깎아서 곶감이나 말랭이를 해 두어야 오래 먹을 수 있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몸은 비록 힘들지만 나는 이런 농사가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석유를 많이 쓰는 커다란 기계와 농약, 비료에 덜 의존함으로써 땅에 물리적, 화학적으로 부담을 덜 주기 때문이다. 또 한 세대 전까지의 농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러한 농사가 더 자립적이고 온전한 농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더불어 과잉생산과 치열한 경쟁, 소득의 양극화로 수렁에 빠진 국가경제가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많은 도시민이 귀농해서 자급적인 소농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김계수 농부·순천광장신문 발행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