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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5 18:48 수정 : 2015.11.15 18:48

두려움은 약자의 표지이다. 1945년 8월28일 마오쩌둥은 국민당의 수도 충칭을 방문했다. 대장정을 거쳐 옌안에 들어간 지 10년 만의 외출. 마오를 태운 비행기에는 미국의 중국대사 패트릭 헐리가 탔다. 비행기 격추를 두려워했던 공산당이 헐리의 동승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과 장제스, 첫번째 국공 영수회담에서 두려움은 공산당의 것이었다. 이후 장제스의 국민당은 부패와 무능으로 자멸했지만, 당시 마오는 연회에서 ‘장제스 총통 만세’를 외쳤다.

70년이 흐른 지난 11월7일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이 만났다. 두번째 국공 영수회담이고,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이다. 시와 마의 악수는 국민당 집권 8년 동안 눈부시게 변화한 양안관계를 반영한다. 다만 이 장면은 드라마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역사의 무대에서 국민당이 퇴장할 차례다.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승리할 것이다. 21세기의 국공합작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었지만, 빛 때문에 생겨난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너무 빨리 가까워져서 생겨난 대만 사람들의 두려움 말이다.

힘이 있으면 교류와 협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다. 대만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40%를 넘었다. 중국이 기침을 하면 당연히 대만은 독감에 걸린다. 최근 대만의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는 중국의 경기침체 때문이다. 물론 대안은 없다. 민진당이 집권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의존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대만 독립 주장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여전히 다수는 통일도 독립도 아닌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다만 양안관계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민진당 지지로 이어졌다. 확실히 양안 협력의 성과는 불공평하다. 대부분의 제조업이 중국 본토로 넘어가면서 청년실업도 증가했다. 작년 대만의 대학생들은 한달 정도 그들의 의회를 점거해 중국과의 서비스협정 체결에 반대하고 양안관계의 속도를 늦출 것을 요구했다. 해바라기 혁명은 대만의 정치지형을 바꾸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었다. 국공합작은 약자의 두려움을 헤아리지 못했다.

양안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단순하지 않다. 통일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다만 두려움의 주체가 뒤바뀐 한반도의 현실은 비정상이다. 분명 정치와 경제, 혹은 군사와 외교 모든 면을 따져 봐도 약자는 북한인데, 관계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남한이다. 강자가 교류의 문을 열고 약자는 닫으려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상식인데, 남북관계는 거꾸로다. 어디 경제 교류만 그런가? 가치든 이념이든 사상이든 힘 있는 사람의 표지는 자신감인데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

다시 국내정치에서 ‘북한 두려움’이 부활하고 있다. 대통령의 ‘통일대비 사상 확립’ 발언이나 어떤 국회의원의 ‘적화통일 대비’ 발언의 배경에는 단지 국정교과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정치적 전술만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그득하다. 반복되는 ‘종북 공세’도 알고 보면 ‘대중의 북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 붕괴론을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두려워하는 정신상태를 정상적인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 동안 이루어진 남북한의 역량 격차를 이해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시대착오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낡은 이념의 우물에서 나와 푸른 창공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국제사회의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강자면서 왜 약자처럼 문을 닫으려만 하는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가져라. 힘이 있는데 왜 두려워하는가? 북한을 두려워 마라. 민주주의는 훨씬 힘이 세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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