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7 18:47
수정 : 2015.11.17 18:47
최근 텔레비전에서 방영 중인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노동조합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제작진과 출연자들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송곳>같은 드라마의 도전은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소통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송곳>은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자생한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갑질’에 분노한 여러 인물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면서 사측의 불법행위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노동인권 운동의 현실과 삶에 대한 통찰은 이미 웹툰에서부터 어록이라는 형태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본사가 프랑스인데도 노조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현상에 대해 묻자,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느냐”고 이 드라마는 대답하고 있다. 또한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구고신 노무사는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데,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1년에 여섯 번 한답니다. 요구안 작성, 홍보물 제작, 서명 운동, 연설문 작성까지”라며 우리의 현실을 개탄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배운 노동법 관련 내용들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을 사업 내용으로 하는 회사가 보여준 최저임금에 대한 광고가 사회의 화제가 되었겠는가? 이 땅에 살아가는 시민들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인 현실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인권 교육은 젊은이들의 고용 창출 못지않게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물론 그동안 노동인권 교육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중고교 교과과정에 노동기본권 및 남녀 고용 평등에 관한 권리 등의 내용을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할 것을 권고하였다. 2011년 당시 서울시 교육감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 노동인권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용두사미가 된 사례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란 못지않게 하반기에 예정된 노동법 개정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역사 교육만큼이나 노동관계법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깊이 인식되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청소년 교육 전반에 노동인권 교과과정이 배제되어 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삶과 현실을 분리하려는 같은 사고에서 나온 다른 현상일 따름이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을 왜곡하고, ‘시민’이 아닌 ‘신민’을 길러내는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자신의 권리와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민주시민은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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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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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송곳>은 시청자들에게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았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을 마주하게 하고 있다. 노동하는 삶의 권리와 노동조합이라는 ‘함께하는 삶’의 가능성을 다시 깨우고 있는 것이다. 구고신 노무사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워야 한다고. 그 두려움은 스스로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학교 과정에서의 근로기준법 교육은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드라마 <송곳>과 우리 사회 젊은 송곳들의 건투를 바란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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