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25 18:42
수정 : 2015.11.25 18:42
129명과 22만명. 그들을 추도한다.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129명이 사망했다. 시리아에서는 22만명이 사망했다. 언론은 파리의 ‘연쇄 테러’를 연일 보도하지만, 시리아인 사망 소식을 보기는 쉽지 않다. 129명의 사망에 ‘분노’한 프랑스와 미국 정부 등은 강력한 보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22만명의 사망에 상응하는 ‘분노’는 찾기 어렵다.
이러한 관심의 비대칭, 분노의 비대칭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세상은 생명을 똑같이 존중하지 않는다. 프랑스인, 그중에서도 백인의 생명은 아랍인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인종이나 종교보다도, 세상을 가르고 있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분리가 아닐까. 금수저의 죽음은 전세계를 들썩이게 하지만 수십만 흙수저의 주검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 흙으로 돌아간다.
더 큰 비극은 금수저의 죽음이 더 많은 흙수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등이 연일 시리아에 공습을 퍼붓고 있지만, 그로 인해 몇 명이나 죽는지, 누가 죽는지는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무고한 프랑스인들을 살인한 행위는 비난받고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연쇄 테러’의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있는지, 그 처벌이 비례성의 원칙 등 국제법의 기준에 맞는지 질문하는 사람도 없다.
그 침묵의 동맹 속에서 각국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바쁘다. 미국은 아사드 정부를 전복시켜 친미정권을 들이고 싶고, 러시아는 이참에 중동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유전을 가진 시리아를 지배하기 위해 오토만 제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군사력을 행사했던 프랑스는 바야흐로 군사력을 다시 행사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오랫동안 시리아에 관심이 있었고,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직접적 원인은 부시 정부가 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 부시 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비밀작전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사우디 정부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다양한 수니파 그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중동에서 사회주의, 나세르주의, 이란의 시아파 등을 견제하기 위해 수니파를 직간접으로 지원했던 미국에는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지원했던 수니파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와하비즘이었다. ‘하나의 지배자, 하나의 권한, 하나의 사원’이라는 독트린으로 제도화된 와하비즘은 사우디 왕권과 결탁하여 급속히 성장했다. 사우디가 원유 수출로 번 돈은 와하비즘을 키우는 자금원이 되었고, 사우디 왕가를 지원하는 미국은 와하비즘이 중동에 확산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냉전이 끝난 뒤 이의 한 분파인 알카에다는 미국을 악의 근원으로 보기 시작해 9·11 테러로 미국을 공격했다. ‘거대한 악’이라던 소련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키운 것이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사드 정부를 바꾸기 위해 지원한 수니파 역시 와하비즘이었고, 이의 한 분파가 이슬람국가(IS)가 되어 파리 테러를 자행했다. 악의 축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악을 키운 업보이다.
이러한 ‘악의 연결고리’는 바야흐로 확대재생산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는 묻지 않고, 파리 테러만을 물으며 보복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도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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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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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더 많은 인명의 살상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늘 129명과 22만명 모두를 추모해야 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생길 더 많은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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