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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30 18:47 수정 : 2015.12.01 08:47

[이계삼 세상읽기]

지난 주말을 강타했다는 칼럼 ‘간장 두 종지’를 읽어보았다. 대단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2인당 간장 한 종지’에서 곧장 ‘아우슈비츠’로 비약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조선일보사 근처의 중국집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 마지막 문장은 백미였다. 눈에 잡힐 듯 그려낸 상황 묘사와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유, 주워담을 생각 없이 결론으로 성큼성큼 내닫는 문장력. 조선일보에도 드디어 류근일 김대중 주필의 후계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글을 읽으며 뭔가 세상사의 한 비밀을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어디서 행복을 느끼고, 진심 분노할까. 나는 그런 궁금증이 있었다. 이른바 한국의 주류 엘리트들, 권력의 호위무사들에게서 나는 인생의 의미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듯 가치의 허무주의를 느꼈다. 수치와 모멸의 감각이 거세되었는지 저들은 화도 잘 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예민하게 주의집중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간장 두 종지. 점심 메뉴와 갑질의 기쁨. 그런 것이었다.…

조선일보 11월28일자 칼럼 ‘간장 두 종지’
“저는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도 가동될 원전을 결정할 권한이 우리에게 있는지, 이런 허술하고 부실한 검증으로 60년 원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이미 (고리 지역에) 6기가 가동되고 있고, 340만명이 30㎞ 반경 안에 사는 곳에 원전 한 기를 더 집어넣고, 그럴 자격이 우리 위원들에게 있는지, 신고리 3호기 없으면 전력대란 일어난다고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하고 그래서 목숨을 끊는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울먹인다.) 그런데 지금 전력 남아돌고 있습니다. 밀양 주민들한테, 이거 허가되면 목숨을 내놓으라는 그런 결정을 우리가 하게 되는 거예요. 원안위라도 밀양 주민들한테 죄송하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몇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운다.)”…

지난 10월29일, 원자력안전위원회 47차 회의 자리였다.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안이 표결에 부쳐지기 직전, 김혜정 위원은 이렇게 눈물로 호소했다. 여러 가지로 중요한 자리였다. 신고리 3호기는 건설비만 6조원이 넘게 들어간, 60년짜리 1400메가와트급 초대형 핵발전소다. 그리고, 밀양 송전탑의 건설 명분이었다. 밀양의 70대 노인 두 명이 자결했고, 세 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한국형 원전’의 참조 모델이며, 2013~14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원전 비리의 진앙지였다. 그리고, 신고리 3호기의 운영 허가로 고리 지역은 세계 최대 핵발전 밀집 지역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제 원자력업계의 이슈가 된 다수호기 검증(여러 기의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을 때, 사고 발생 시 파급효과 검증과 차단)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회의 내내 신고리 3호기에 대한 원안위의 부실 검증을 지적하던 김혜정 위원은 마지막에는 눈가가 벌게지도록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참관하던 밀양 어르신들도 함께 울었다. 그런데, 회의장 분위기는 어떠했을 것 같은가. 그날 참석한 원자력안전위원 7명 중 한 명은 아예 고개를 젖힌 채 자고 있었고, 두 명은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쉴 새 없이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밀려온 식곤증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고, 회의 내내 신들린 듯 채팅에 몰두하던 그 위원은 점심 식사 때 ‘간장 두 종지’ 비슷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그런 생각이 든다. ‘간장 두 종지’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지금 ‘총궐기’가 절실한 이유는, 저 ‘간장 두 종지’들로부터 우선 나 자신의 생명과 존엄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계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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